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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도 광주목에 설치하여 운영한 경양도의 역. 경양도(景陽道)는 경양역(景陽驛)을 중심으로 하여 운영된 역도(驛道)로서 광주~옥과~곡성, 광주~동복~능주 등으로 이어지는 역로를 관할하였다. 경양도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경양역 찰방(察訪)인데, 종6품직에 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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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1958년 건립된 800석 규모의 극장. 장인섭, 장호승, 최수열 등이 합자해서 세운 영화관으로 3000만 원의 자본금이 투자되었다. 계림극장은 건립 당시 담양과 순창 방면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계림오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영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2001년 휴관한 뒤, 2008년 극장의 건물 또한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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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었던 상설 전통시장. 계림시장은 1950년대에 계림오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에 광주읍성의 동문을 나가는 길목에 계림동이 자리잡고 있어 '동문시장'이라고도 불리웠다. 원래 계림시장은 광주선(線)과 여수선(線)의 철도 분기점인 계림오거리에 터를 잡고 땔감과 신탄을 주로 취급하였다. '나무전[땔나무를 파는 가게] 거리'라는 이름에서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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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열렸던 최초의 국악 경연대회. 광주국악경창대회는 오늘날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여러 국악 경연대회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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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를 대표하는 다섯 가지 음식. 광주광역시는 예로부터 기름진 호남평야와 서남해안의 신선한 농수산물을 바탕으로 음식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그 중 가장 맛있고 특색 있는 다섯 가지 음식을 '광주 5미'로 꼽는다. 광주 5미는 지난 2003년 광주광역시가 광주광역시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을 발굴, 선정, 관광상품화하기 위한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하여 선정하였는데,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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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조선대학교 내에 있는 학교 건물.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은 한국 최초의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의 본관으로 전라남도지사 및 광주시장이 주축이 되어 1947년부터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진행되었다. 이때 전라남도지사로부터 박철웅이 일본 유학파이자 문교부 관계의 업무를 한 경험을 들어 업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광주 시민과 전라남도 도민의 성원 하에 7만 20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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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조선대학교 설립 초창기의 중학교 건물. 광복 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인재 양성을 위한 기관을 세우기 위해 7만 2,000여 명의 회원들이 염원을 모았다. 6.25전쟁 등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민·관·군이 협력하여 한국 최초의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46년 7월 조선대학원부속중학원이 설립되었고, 1948년 7월 조선대학교부속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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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광역시 동구 장동에 있었던 공립 근대 학교. 광주고등여학교는 1923년 3월 30일 인가 신청, 1923년 4월 9일 인가 고시를 통해 1923년 4월 15일 광주공립소학교[현 광주중앙초등학교]에서 개교하였다. 광주고등여학교는 광주 지역 내 일본인 여학생들을 위해 개교한 학교로, 1925년까지는 광주공립소학교의 건물 일부를 교사(敎舍)로 사용하였다. 19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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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군 공수방면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초등 교육기관. 본래 1896년(고종 33) 11월 광주향교의 부속 건물 사마재(司馬齋)에서 문을 연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를 흡수하여 1906년 11월 1일 공립으로 광주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개교 당시 수업연한 4년 1학급 50명 규모였으나, 1914년에는 7학급 342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1922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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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공원. 광주공원은 광주지역 제1호 도시공원으로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어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던 곳이다. 현재는 신사는 철거되었고,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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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에 있는 공항. 광주공항은 일제강점기 1929년 광주군 극락면 치평리[현재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에 임시 활주로를 개설한 것이 그 시초이다. 광복 후인 1964년 1월 광산군 송정읍 신촌리[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로 옮겼고, 1966년 제1전투비행단이 이전하면서 군공항과 민간공항이 함께 운영 중이다. 1995년 국제공항으로 승격하였지만,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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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에 있는 광주광역시 관할 자치 행정 기관. 광주광역시청은 광역 지방 자치 단체인 광주광역시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으로,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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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광주 지역에서 설립, 운영된 기생들의 조합. 일제강점기에 광주권번은 광주예기조합으로 시작된 기생들의 조합이다. 해방 이후 1951년에는 광주권번의 후신으로 광주국악원이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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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5가에 있는 86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유일무이한 단관 극장. 1931년 광주좌(光州座)가 불에 타 없어진 뒤, 1930년대 중반까지 광주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제국관(帝國館)뿐이었다. 하지만 제국관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극장이었기 때문에 조선인이 경영하는 영화관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광주극장(光州劇場)이 1933년 법인을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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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24년에 광주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에 의해 설립 및 운영된 은행. 일제 강점기 이후에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무진업을 양성하기 위해 전국에 무진회사를 설립하는 '조선무진령'이 공포되어 광주에서도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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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호남동에 있던 사립상업학교. 1920년대 들어 일제의 근대교육이 대중화되면서 교육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광주사립호남보통학교이다. 1921년 4월 지금의 중앙로 광주세무서 자리에 지역 유지들이 부지 매입비를 마련하고, 마을 재산을 털어 세웠다. 광주사립호남보통학교 설립추진위원회 대표는 김형옥이었으며, 최선진·최상현·조만선·지응현·현준호·정덕범·정낙교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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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 있는 기차역. 광주역이 있던 대인동[현 대인동 소방서 자리]은 당시 역전통으로 불렸다. 당시 광주역사는 목조건물이었다. 그러나 6.25전쟁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개통 당시 광주역으로 불리다 운영주체가 조선총독부 철도국으로 이관되며 전남광주역으로 바뀌었다. 이후 1969년 7월 25일 역사의 신축 준공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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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처음 광주우체사(光州郵遞司)가 있던 곳은 서문통[지금의 광주우체국 앞길에서 동구 황금동으로 가는 길]이었고, 옛 한옥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치에 대한 정보는 일본 우편국으로 강제 통합된 이후의 것일 수 있어 정확한 위치 비정은 어려운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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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광주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광주 지역에 도입된 최초의 근대적 통신 사무 담당 기관은 1897년 설치된 광주우체사였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통신기관을 일본이 장악하게 되면서 우편 사무도 일본인들의 관리를 받게 되어 광주우체사도 역할과 명칭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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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설립된 조선인 자녀를 위한 사립 유치원. 1920년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설립된 조선인 자녀를 위한 유치원은 3곳이었다. 1920년에 설립된 사립 금정교회, 1922년에 설립된 사립 누문유치원, 그리고 1925년에 사립 광주유치원이 설립되었다. 광주유치원은 광주기독교청년회의 경영 아래 유지가 힘들었으며, 음악회 등을 통해서 기금을 모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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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광주 지역에 설립된 전기회사. 광주전등주식회사의 발기인은 당시 대구에 거주하던 오구라 요시노[小倉吉野]를 비롯한 일본인들과 조선인 일부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 회사령을 통해 조선인들의 근대 산업에의 진출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광주전등주식회사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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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최초의 공연장 겸 극장. 1916년 무렵 일본인 후지가와 다다요시[藤川忠義]가 그 당시 총공사비 800원을 들여 설립하였다. 영화 상영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연극과 연주회 등 공연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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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광주 지역민의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전국 최초로 설립된 금융조합. 광주지방금융조합 외에도 광주 지역에 설립된 또다른 금융조합은 1919년 3월 설립된 송정금융조합, 1923년 9월 설립된 도시조합인 금봉금융조합, 1930년 12월 설립된 동광주금융조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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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 일대에서 발원하여 서구 치평동 일대에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하천. 옛 기록에 의하면 광주천은 건천, 조탄강으로 불리었다.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건천이라고 부른 기록이 있다. 또 광주천의 상류는 금계, 하류는 대강,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조탄강은 조탄보라는 제방이름에서 유래하였는데, 한말 때까지 건천 또는 조탄강이라고 불리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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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교육기관. 향교(鄕校)는 조선 전기 지역 교육의 강화와 성리학적 질서의 보급을 위해 설치한 관학 기구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각 도의 안찰사(按察使) 들에게 향교의 흥폐를 통해 지방관의 고과를 삼을 것이며, 교학(敎學) 의 쇄신을 주문하였다. 이에 따라 부, 목, 군, 현의 각 고을에 하나씩의 향교를 세웠고, 그에 따라 광주에도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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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1910년 조선총독부의 헌병 경찰(憲兵警察)을 주축으로 한 무단통치에 의해 일본군 헌병대가 전라남도 경무부와 함께 전라남도 광주군 성내면 남내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일대]의 옛 전라남도 관찰부(觀察府) 광주 관아(官衙) 안에 광주헌병대본부를 설치하였다. 총부지 847평[약 2800㎡], 건평 218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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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에 설립한 전라도 출신 예인들의 국악 공연 단체. 광주협률사는 명창 김채만 사후에 문도들이 스승의 유지를 이어받아 조직한 공연단체이다. 명창 김채만은 전라남도 능주 출신이다. 이날치 문하에서 수련하였고, 광주 속골로 이사해 성장했다. 1902년 김창환의 권유로 상경하여 어전광대가 되어 함께 활동하였다. 궁내부 협률사 해체 후 김창환과 함께 광주로 낙향하여 속골에 머물며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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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었던 가축 기반의 재래 시장. 구동시장은 일제강점기 후 1950년대 중반에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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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는 음식점이 밀집된 음식특화거리. 1990년대 개발된 광주광역시 서구의 대표적인 택지지구인 금호1동 일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먹거리를 갖춘 음식거리가 형성되었다. 이 음식거리를 금호동 음식특화거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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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체육인. 김복실(金卜實)[1905~1952]은 전라남도 광주군 누항촌[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서 5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얼굴색이 검어서 '먹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22년 정동예배당 앞에서 일본 학생 30명과 격돌하여 '배재박치기'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축구·야구·정구 부분에서 심판·코치·감독·선수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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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태오(金泰五)[1903~1976]는 전라남도 광주군 부동방면 금계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서 출생하였다. 숭일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을 지냈으며, 광주기독교청년회[광주YMCA] 간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전남소년연맹(全南少年聯盟)의 창립 대회를 준비하다가 일제에 피체되어 금고 4개월을 선고받았다. 김태오는 일제의 신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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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체육인. 김후옥(金厚玉)[1910~1981]은 1910년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수기동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광주YMCA 회관 종합체육관 관장으로 권투, 유도, 역도, 레슬링, 기계체조 등을 지도하고,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근대 체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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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던 남광주역과 남광주시장 일대를 아울러 부르는 지명. 남광주(南光州)라는 명칭은 행정구역상의 공식 명칭은 아니다. 1930년 경전선(慶全線)이 개통되고 남광주역과 남광주시장이 들어섰는데, 역과 시장이 광주 도심에서 남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남광주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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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카페. 남국카페(南國-)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며, 대부분 지주와 고위 관리 등 유력인사들의 자제들이었다. 1942년 7월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큰 충돌이 있었다. 발단은 남 아무개가 김용구에게 시비를 걸며, 폭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유도 3단에 6년간 권투를 익힌 김용구는 이에 물러서지 않고 큰 한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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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있던 광복 이후 광주 최초의 호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춘목암(春木庵)을 경영하던 조성순(趙成洵)이 1940년 전라남도 광주부 동정(東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개인주택을 신축하였다. 가옥의 내부는 고급 장식과 가구, 화려한 정원을 갖춰 광주 지역에 지어진 개인주택 중 손에 꼽히는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동명호텔은 광복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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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리 떡갈비는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혼합하여 다진 후 갖은 야채와 양념을 섞고 숯불에 넓적하게 구워낸 음식으로 광주광역시를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송정리[송정동의 구 명칭] 떡갈비는 1950년대 송정 5일장 주변에서 밥집을 하던 최처자 할머니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최처자 할머니가 40여 년간 식당을 하는 사이 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이 나와 하나둘 떡갈비 식당을 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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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1월 1일 조선총독부령 시장규칙에 의해 전라남도 광주부에 개설된 제2호 공설시장. 명치정(明治町) 시장(市場)은 전라남도 광주부 명치정 2정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2가 일대]에 있었으며, 광주 상설 시장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명치정 시장은 광주천을 거점으로 열렸던 두 개의 오일장[큰 장, 작은 장]을 병합한 사정(社町) 시장[사동시장(社洞市場)], 사정 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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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서 개관한 극장. 무등극장(無等劇場)이 들어선 자리는 그 이전부터 극장이 존재해 왔다. 무등극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로 나뉜다. 첫 번째는 1955년, 두 번째는 1967년이다. 1978년부터 무등극장을 인수하여 운영을 맡은 오권수 회장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1955년부터 무등극장으로 불린 것으로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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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광주 지역에 설립한 양말 제조업체. 무등양말은 1935년 광주 계유구락부 회원이며 민족계 학교인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맡았던 양태승이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과 함께 민족 자본으로 설립한 기업이다. 당시 일본 종방[현재 일신·전남방직의 전신]이 광주에 공장을 짓자 방직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낙면[면사를 방적할 때 생기는 쓰레기 솜]과 낙사[면사를 방직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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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36년 광주 지역에 설립되어 운영된 양말 제조 회사. 설립자인 양태승(梁泰承)[1889~1955]은 화순 능주 출신으로 융희학교(隆熙學校)와 정리사(精理舍) 고등과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하여 고베신학교(神戸神学校)를 졸업한 인물이었다. 그는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고, 1928년부터는 대구의 계성학교에서 교감으로 활동하는 등 민족 교육에 관심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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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광주 지역에서 운수업·교통업·항공업 분야에서 활동한 기업인. 박인천(朴仁天)[1901~1984]은 전라남도 나주군 다시면 신석리 동산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안곡서당(安谷書堂) 정성호(鄭聖浩)에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나주군 다시면 영동리 팔현서당(八賢書堂)에서 열린 강경시(講經試)에서 장원하였다. 1946년 4월 7일 전라남도 광주 황금정(黃金町)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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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조선 전기에 주로 제작된 퇴화한 양식의 청자.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청자와 유사한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胎土)로 도자기 형태를 만들고 표면에 백토(白土)를 발라 분장(粉裝)한 다음 청자 유약을 입혀서 구운 자기이다. 이러한 형식은 중국 북송대 자주요(磁州窯)의 민간 용기에서도 확인되지만, 양자 사이에는 시각적 격차가 있다. 상감청자의 제작으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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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 있던 향토 음식점. 뽐뿌집은 1960~1970년대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음식점으로 김귀례(金貴禮)가 30여 년 간 영업을 하였다. '뽐뿌집'이란 이름은 가게 앞에 손으로 마치 작두질을 하듯 물을 퍼 올리는 펌프가 있어, 펌프를 당시 ‘뽐뿌’라고 부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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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 주거환경 개선사업 지구 내에 조성된 테마 거리. 과거 광주천에 철제 복공판으로 만들어져, 일명 ‘뽕뽕다리’로 불렸던 학림교의 옛 이름을 따서 지은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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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에 있었던 초등 교육기관. 광주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한 뒤로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를 비롯한 기독교계 사립 학교가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사립배영학교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에서 문을 열었다. 1908년 비정규 교육기관으로 문을 연 배영학교는 본래 '향사리 주일학교'라는 명칭으로 무산 아동을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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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일제강점기 때 개설되었다가 사라진 재래시장. 사정시장은 일제강점기 때 1932년 큰 장과 작은 장을 합쳐 광주시 사동 37번지 매립지에 개설되었다가, 1941년 천정[지금의 양동]으로 이전된 시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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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공원. 사직공원은 광주광역시 도심의 광주천변에 있는 공원으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이다. 사직공원은 국가의 안전과 풍년을 기원하며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던 사직단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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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정광호가 「2.8 독립선언서」을 가지고 귀국하여 최한영, 박팔준, 강석봉 등 '신문잡지종람소[이후 삼합양조회로 개칭]' 청년들을 만나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1919년 2월 말 김필수 목사가 3.1운동 거사준비위원회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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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누문리에 설립되었던 초등 교육기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에 속한 각 면에는 보통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서방공립보통학교는 1921년 5월 인가를 받아 10월 광주면 누문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서 4개 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24년 수업연한이 6년으로 연장되었으며, 1931년 본관을 준공하였다. 광복 이후인 1950년 교실 31칸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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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선교사 사택[1920년대]은 1920년대에 붉은 벽돌과 슬라브로 건축한 선교사택이다. 1980년대 미국남장로 선교부가 철수하면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노회에 매각되어 호남신학대학생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땅콩의 형태로 되어 땅콩집이라 불리는 듀플렉스 주택으로 정면 입구에 좌우로 나란히 주출입 현관문이 있는 2층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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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있는 관방유적으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높은 담을 세운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성은 지배자의 주거지나 성역 등을 보호하기 위해 네모꼴로 쌓은 방어벽[성벽]을 말하며, 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곽은 이러한 성의 외부를 둘러싼 바깥의 방어벽을 의미하며, 일반 백성의 주거지를 보호하는 구조로 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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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운 탑의 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광주송정도서관 앞 현충탑 우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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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던 여자 사립학교. 수피아여학교는 숭일학교와 함께 전라도 광주 최초의 중등학교로 꼽힌다. 1907년 유진 벨(Eugene Bell)[한국명 배유지]과 오웬(Clement C. Owen) 목사는 개신교 신자의 자녀[남 1명, 여 3명]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시작하였다. 학교는 유진 벨 목사 사택 내 사랑방으로, 지금의 광주시립사직도서관 일대이다. 초창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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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던 사립학교. 숭일학교(崇一學敎)는 수피아여학교와 함께 광주 최초의 중등학교로 꼽힌다. 1907년 유진 벨(Eugene Bell)[한국명 배유지]과 오웬(Clement C. Owen) 목사는 개신교 신자의 자녀[남 1명, 여 3명]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시작하였다. 학교는 유진 벨 목사 사택 내 사랑방으로, 지금의 광주시립사직도서관 일대이다. 초창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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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요릿집. 신광원(新光園)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 출신 이동채(李東彩)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옛 그랜드호텔 뒤편 주차장 자리]에 개업한 요릿집이다. 신광원은 광주 주요 인사들의 출입처이기도 하였다. 신광원에서 광주학생운동으로 체포된 학생들을 변호해주려 전국 각지에서 광주를 찾아온 변호사들을 위해 위로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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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 개관하였던 동아극장의 후신. 동아극장(東亞劇場)이라는 이름은 1925년 은행원 출신 최남(崔楠)이 인수한 '서울 동아부인상회'에서 비롯되었다. 최남은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전국에 체인점 형태로 점포를 열었다.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 있던 '동아부인상회 광주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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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인조의 넷째아들 용성대군의 태를 묻은 곳. 태실(胎室)이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胎)를 봉안하는 곳을 말하며, 태를 묻은 산을 태봉산이라 불렀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여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태를 보관하는 방법도 신분의 귀천이나 계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달랐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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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번지에 있던 극장. 신영극장(新映劇場)이 개관할 당시 건물은 1930년대에 지어진 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을 극장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평일에는 주로 영화를 상영하였고, 1950년대 중반 이후까지도 변사(辯士)가 있는 무성영화를 상영했다고 한다. 주말에는 쇼 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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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새끼 돼지를 원재료로 하여 만든 향토 음식. 새끼 돼지를 각종 재료와 함께 쪄서 만든 전라도 특유의 보신용 음식으로, 비타민 F가 풍부하여 갱년기 남녀의 기력 저하와 허약 체질에 특히 효과가 좋다. 찜 외에도 애저탕이 있는데, 이는 조리 과정의 번거로움 및 국물 음식을 선호하는 관습에 따라 국물에 끓이는 탕의 형태로 변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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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근대문화유산을 간직한 양림동 곳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연, 투어, 전시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향유하며 근대문화의 총아였던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되어 떠나보는 근대 광주로의 시간 여행. 양림동은 광주광역시 남구에 자리하고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이다. 조선시대에 부동방면에 속해 있다가 일제강점기인 1923년 ‘광주면(光州面)’의 1차 시가지 확장 때, ‘양림정(楊林町)’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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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세운 가설 극장. 양명사(揚明社)는 190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세워진 창극을 공연하던 근대적 의미의 상설 극장으로 김인수, 정인준 등이 설립하였다. 극장주는 서울 출신의 이응일이었는데, 당시 징세청부인(徵稅請負人)으로 전라남도 광주에 왔다가 정착하였다. 이응일은 당시 유행하던 창극을 바탕으로 흥행하던 업종에 손을 댄 것이 양명사를 세우게 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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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라남도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교사들이 애국애족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만든 가극(歌劇).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은 1919년 3월 10일부터 13일까지 숭일학교, 농업학교 학생들, 시민들과 힘을 모아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또한, 수피아여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은 백청단을 구성하여 시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태극기에 대한 설명을 하는 등의 계몽운동을 하였고, 반일회(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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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 경찰행정 사무를 담당하던 광주경찰서가 있던 자리.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는 1896년(고종 33) 5월 광주읍성 내 훈련청(訓練廳) 자리에 세운 전라남도경무서(全羅南道警務署)에서 출발하였다. 1905년에는 일본인 경무고문(警務顧問)이 배치되고, 통감부(統監府)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1907년에는 관련 법규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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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기차역의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최초의 철도가 놓인 것은 1913년 10월 1일 목포~대전 간 호남선 철도 송정리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송정리역과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리[약 12㎞]였으며, 그 때문에 철도 연결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높았다. 그리하여 송정리역과 광주를 잇는 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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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각종 범죄자들을 수감하던 광주형무소가 있던 자리. 광주형무소(光州刑務所)는 1907년 일제의 통감부(統監府)가 대한제국의 사법제도를 개편하면서 설치한 범죄자 수감시설인 광주감옥을 전신으로 한다. 1908년 7월 운영을 시작한 광주감옥은 본래 대한제국의 광주감옥을 인계하여 광주읍성 내의 충장로 일대에 있었으나, 1908년 대대적인 신축공사를 벌여 수인(囚人) 공장 등 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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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이 주도하여 설립된 숭일학교가 있던 자리. 숭일학교는 1907년 3월 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이 주도하여 설립된 근대적 교육기관이다. 설립 초기에는 비인가 학교였으나, 1908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4년제 소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초대 교장으로 프레스턴(John F. Pre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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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있는 오지호의 창작 공간. 오지호가는 남부 지방 농촌주택의 형태가 남아 있는 집으로,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 (吳之湖)[1905~1982]가 1953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복직하면서 광주에 정착한 이후 1982년 타계할 때까지 창작활동에 전념하던 곳이다. 전면을 보면 자연석 기단에 덤벙주초석과 사각기둥이 초가지붕을 이고 있다. 부엌 2칸과 우물마루를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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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전라남도 광주군 효쳔면 양림리에서 시작된 외국인 선교사들의 정착 및 활동.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 선교사는 전라남도 광주군 효쳔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사택에서 최초의 예배를 드렸다. 이후 전라남도 광주 최초의 교회인 양림리교회[지금의 광주양림교회[통합]]를 세우고 본격적인 선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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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용두동과 대촌동을 연결하는 교량. 용두교(龍頭橋)는 광주광역시 북구에 설치된 교량으로 용두동과 대촌동 사이의 영산강을 건널 수 있도록 가설된 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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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광주 지역에서 출범한 청소년 단체. 용진소년대는 보이스카우트의 전신이 되는 소년척후대로서 1931년 10월 김후옥이 조직한 광주 지역 최초의 스카우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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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우렁이를 주재료로 하여 끓인 향토 음식. 우렁이는 나선형 패류로 전국의 논이나 소택지에 살며,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농약 때문에 점점 그 수가 매우 줄어들었는데, 유기농법이 확산되면서 우렁이가 농촌에서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다시 조성되고 있다. 우렁이는 빈혈 예방, 피로 회복, 피부 미용, 신경통 등에 효능이 뛰어나며, 우울증을 없애고, 스트레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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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일대에서 음식을 파는 가게. 전국 어디에서든 전라도를 맛의 본고장으로 꼽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며, 그 가운데에는 광주광역시가 있다. 예부터 광주광역시는 호남 물산의 집산지로서 남도의 산, 들, 바다, 갯벌 등 천혜의 자연에서 생산된 갖가지 식재료가 모여 갖가지 음식으로 발달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미향 광주광역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광주광역시를 대표하는 음식에서부터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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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환(李炳煥)[1898~1946]은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서 태어났다. 숭일학교 재학생으로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 「독립가」 등을 군중들에게 배포하였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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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순(李順)[1913~1991]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수기옥정(須奇屋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1929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순은 구속 학생 석방과 식민지 교육 철폐를 요구하는 교내 시위와 동맹 휴학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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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의병. 이운집(李云集)[1870~?]은 1870년(고종 7) 전라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09년 6월 전라남도 광주를 비롯한 나주, 영광, 함평, 담양 등지에서 활동하였던 김원국(金元國)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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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주상(李周庠)[1867~1948]은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두 아들과 함께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국민회(國民會)에 가입하여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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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창호(李昌鎬)[1902~1931]는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숭일학교 재학 중에 아버지 이주상(李周庠)과 함께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만세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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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전라남도 등지에서 활동한 화순 출신의 종교인이자 교육자. 이현필(李鉉弼)은 1913년 1월 28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장면 원천리[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 권동마을에서 아버지 이승노(李承老)와 어머니 김오산(金烏山) 사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싹뿌리이고, 호는 방림(芳林)이며, 호적 이름은 이현정(李鉉鼎)이다. 1923년 천태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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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이 1907년부터 1923년까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근대적인 병영이 처음 들어선 것은 1897년(고종 34) 6월이다. 대한제국 전주진위대(全州鎭衛隊) 휘하의 광주지방대(光州地方隊)가 편성되어 참령(參領) 우기정(禹冀鼎) 이 지휘하는 1개 중대 규모의 군대가 광주에 주둔하였다. 당시 이들이 주둔했던 곳은 옛 전남도청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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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광주광역시의 역사.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식민지 통치 지배를 받았던 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은 여러 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양한 변천을 겪었으며,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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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가네보방적을 모태로 세워진 방적회사.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면직물이나 면실을 판매하던 가네보[鐘淵]방적은 누에고치 생산량이 많았던 전라남도 광주군 지한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제사공장[명주실 생산공장]을 건립하였다. 제사공장의 순조로운 경영에 자신을 얻은 가네보방적에서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대규모 면방공장을 짓기로 한다. 광주 지역에 면방공장을 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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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영구(林永求)[1892~1952]는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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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경례(張慶禮)[1913~1997]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정 250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하였으며,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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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매성(張梅性)[1911~1993]은 전라남도 광주군 부동방면 금계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원용과 어머니 최예언 사이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전라남도 광주 지역 학생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장재성(張載性)의 동생이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장경례(張慶禮), 박옥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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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영규(張泳奎)[1895~1970]는 전라도 광주목 부동방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경제학부에 재학 중 2.8독립선언[조선청년독립선언] 행사를 주동하였다. 일제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탄압과 감시 속에서 일본과 국내를 오가며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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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광주극장의 역사.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 있는 광주극장은 1935년 10월 10일 첫 상영 이후 2021년 현재까지 86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 객석은 856석 규모이며, 상영 스크린이 하나뿐인 단관 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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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세워진 전남 지역 최초의 대규모 생사(生絲) 공장. -. 삶아서 익지 아니한 명주실, 생사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한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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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던 공립초등학교. 1895년 9월 7일[음력 7월 19일]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칙령 제145호인 소학교령[관립 소학교, 공립 소학교, 사립 소학교 등 3종으로 나누고 심상, 고등 2과로 편성하여 남녀를 모두 공부하게 함. 8월 1일부터 시행됨]이 반포되었고, 소학교령에 따라 전라도 관찰부의 소재지인 광주에도 소학교가 설치되었다.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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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양잠 산업 진흥을 위해 설치한 농업 기구. 전라남도의 양잠업 진흥과 관련 기술의 전수, 연구, 교육, 원잠종제조 등을 위해 전라남도가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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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가옥. 양림동은 광주에 서양 문물이 유입되던 근대기에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조화로움으로 서구 문화와 예술이 가장 먼저 꽃피웠던 공간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문화·예술의 향기가 공존하고 있다. 1920년대에 양림동에 건축된 이 가옥은 근대기에 세워져 서양과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던 시대적 배경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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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우산동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통시장. 말바우시장은 동강대학 사거리에서 전남대학교 방향 오른편에 있다. 옛날 인근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말바우’라고 불렀다. 이 바위는 1970년대 도로 확장 공사를 할 때 파괴되어 없어졌으나 말바우라는 지명은 시장 이름으로 남았다. 조선시대 광주읍성 밖 광주천변에 있던 큰 장과 작은 장의 명맥을 오늘날까지 잇고 있는 정기 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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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2.8독립선언을 계획하고 광주 3.10만세운동을 주도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광호(鄭光好)[1895~?]는 전라도 광주목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13일에 일어난 광주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으며,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 참사(參事),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상해유화학생회(上海留華學生會)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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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병소(丁炳沼)[1898~1948]는 전라남도 광주군 대촌면 대지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당시 광주공립농업학교[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학생으로 장날 부동교 아래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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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삼모(鄭三模)[1896~?]은 1896년(고종 33)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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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체육인이자 종교 지도자. 정인세(鄭寅世)[1909~1991]는 경기도 경성부 용산면[지금의 서울특별시 마포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YMCA에서 유도와 덴마크식 기계체조를 가르치고, 광복 후 동광원(東光園)이라는 고아원 원장을 지냈으며, 정신질환자의 안식처인 귀일원(歸一園)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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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에 개관한 극장. 제국관(帝國館)은 1927년에 개관한 광남관(光南館)의 후신으로, 관주(館主)는 일본인 구로세 도요조[黑瀨豊藏]였다. 일본 도호[東寶]영화사의 전속 극장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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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전라남도 광주시 삼성동에 개관하여 2012년까지 운영되었던 극장. 일제강점기 당시 제일극장(第一劇場) 자리에는 광주부립도서관이 있었다. 광복 후에는 '신성다방'이라는 시인 박용철의 아내 신정희가 운영하는 공간이 옆자리에 생겨 문인들이 자주 찾았다. 이후 극장으로 사용된 건물은 영암 출신의 사업가가 '월출상회'라는 양품점을 운영하던 곳이었다. 이를 충장로에서 잡화상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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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공찬(曺公贊)[1880~1962]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동]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창산공찬(昌山公贊)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내 곳곳을 행진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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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신식산은행령에 의해 설립·운영된 조선식산은행의 광주 지점. 조선식산은행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에 자금을 공급 및 조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 일제가 설립한 중요 산업기관의 대부분에 산업자금을 대출해주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채권 발행과 강제 저축을 통해 조선의 자금을 흡수하여 일본 정부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산업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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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중독서회를 조직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만우(朱萬尤)[1922~1945]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38년 광주서공립중학교 재학 중 유몽룡(劉夢龍), 강한수(姜漢秀) 등과 함께 서중독서회(西中讀書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후 무등회(無等會)로 확대 개편하고 창씨개명·일어 상용·징병제 등에 반대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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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소녀회에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말순(朱末順)[1915~2000]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소녀회(少女會)에서 활동하였고, 1929년 11월 동맹휴학과 백지동맹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학교로부터 퇴학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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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체육인 겸 독립유공자. 주봉식(朱奉植)[1914~1949]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금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청소년의 체육을 단련시키고, 두 차례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2회에 걸쳐 2년 8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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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있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의 중등 보통 교육기관. 광주광역시 최초의 중등학교로는 기독교계의 사립학교인 숭일학교와 수피아학교를 꼽는다. 두 학교는 원래 한 뿌리에서 비롯되었다. 1907년 의료 선교사 유진 벨(Eugene Bell)[한국명 배유지]과 오웬(C. C. Owen)[한국명 오원] 목사가 신자 자녀[남학생 1, 여학생 3]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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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개통된 철도에 관한 역사.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는 1910년대 철도가 개통되었다. 오늘날 광주광역시의 주요 역으로는 광주송정역, 광주역, 남광주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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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한정식집. 청미장은 6.25전쟁 직후 영업을 시작하였다. 청미장은 제일극장[현재의 롯데시네마 충장점] 뒷골목에 자리하였고, 개업 초기 초가집이었던 청미장의 주인은 이옥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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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있는 도시재생 마을. 청춘발산마을에서는 도시재생사업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이 모여들어 주민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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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을 주도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병준(崔丙浚)[1895~1945]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숭일학교 교사로 광주 3.10만세운동을 주동하고 시위를 지휘하던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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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성원(崔聖源)[1912~2002]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최병연(崔丙淵)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으로 광주고보독서회(光州高普讀書會)를 조직하였으며, 독서회 활동과 관련하여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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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수향(崔秀香)[1903~1984]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현숙(崔賢淑)이다. 수피아여학교[지금의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학생으로 광주 3.10만세운동 때 직접 제작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누어주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최연소자로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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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순우(崔淳祐)[1899~1966]는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순오(崔順五), 최순호(崔淳祜)이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던 중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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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영균(崔暎均)[1900~1971]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교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및 남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영균(崔煐均)이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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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 최운영(崔雲泳)[1906~1932]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일명 최판영(崔判泳)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최초 영화배우로, 전라남도 광주·목포 간 일대를 배경으로 조선 사람의 참담한 생활과 성(性)에 대한 갈등을 폭로하고 영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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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2.8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식민통치를 비판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최원순(崔元淳)[1876~1936]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수기옥정(須奇屋町) 293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수기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초(石蕉), 석아(石啞)이다. 1919년 일본에서 유학생들과 함께 2.8독립선언을 주도하였으며, 『동아일보』 기자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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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농고독서회를 조직하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정기(崔貞基)[1913~2000]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누문리 76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독서회(讀書會) 운동에 관한 심문으로 모진 고문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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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을 주도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정두(崔正斗)[1898~1930]는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양산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최정두는 전라남도 광주로 내려와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만세 시위를 지휘하던 중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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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을 주도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한영(崔漢泳)[1899~1990]은 전라남도 광주군[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호남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부동교 아래의 작은장터에서 일어난 광주 3.10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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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한식집. 춘목암(春木庵)의 최초 경영자인 이춘실(李春實)은 1917년 마산에서 광주로 옮겨 와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의 콜박스 사거리 근처에서 우동집을 운영하였다. 이춘실은 황금동 80번지 일대에 부지를 마련해 춘목암을 개업하였다. 그러나 1929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춘실의 여동생 이진(李珍)과 이춘실의 남편 조성순(趙成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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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산. 태봉산은 신안동에 있었던 높이 52m의 작은 산으로, 인조의 아들 용성대군의 태를 묻었던 산이다. 태봉산을 헐어내어 경양방죽을 메우는 데 사용하였고 지금은 태봉산유래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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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호남동에 있던 1957년에 건립된 극장. 태평극장(太平劇場) 대표 신성용(申成龍)은 농약 판매 사업을 했다고 한다. 신성용 등 6명이 주주로 참여하여 극장을 건립하였다. 동방극장[무등극장·무등시네마 전신], 광주극장, 신영극장[대한극장으로 개칭], 남도극장에 이어서 건립되었던 극장으로 알려진다. 2002년 5월 휴관한 뒤, 2008년에 건물이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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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민물새우를 소금에 절여 만든 젓갈. 토하(土蝦)는 하천, 저수지, 개울 등지의 민물에서 서식하는 길이 3㎝ 미만의 작은 새우를 말한다. 다른 이름은 ‘새뱅이’이다.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생이’, ‘새비’라고 불린다. 또한, 논밭의 도랑에서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도랑새우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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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부터 1935년까지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일어난 형평사 운동. 형평운동(衡平運動)은 백정(白丁)들의 인권 존중과 신분 해방을 주창한 운동이며, 1923년 4월 25일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 이후 불평등한 신분 질서는 폐지되었으나, 관례에 의한 신분 질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형평운동은 3.1운동 이후 국민 계몽과 인권 운동에 앞장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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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청년 문화의 산실이었던 흥학관이 있었던 자리. 흥학관(興學館)은 1921년 광주의 부호 최명구(崔命龜)가 희사한 돈으로 최명구의 동생인 최종윤이 지역 청년들의 문화, 체육 활동 진흥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흥학관 설립을 맡은 최종윤은 1920년 광주청년회 설립을 주도하였고, 1921년부터는 『동아일보』 광주지국의 총무와 기자로 활동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