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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57
한자 粉靑沙器
영어공식명칭 Grayish-blue-powdered Celadon
이칭/별칭 분장회청사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재훈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조선 전기에 주로 제작된 퇴화한 양식의 청자.

[개설]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청자와 유사한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胎土)로 도자기 형태를 만들고 표면에 백토(白土)를 발라 분장(粉裝)한 다음 청자 유약을 입혀서 구운 자기이다. 이러한 형식은 중국 북송대 자주요(磁州窯)의 민간 용기에서도 확인되지만, 양자 사이에는 시각적 격차가 있다. 상감청자의 제작으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였던 고려의 청자 제작 기술도 말기인 14세기 중반 이후에는 기술적 쇠퇴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분청사기가 등장하면서 점차 청자를 대체해 갔다.

원래 자기는 강진(康津)이나 부안(扶安)과 같이 제한된 곳에서만 제작되었으나, 15세기 전반 공납용 자기 제작을 담당하는 자기소(磁器所)가 전국 139개 지역으로 크게 확대되면서 각 지역으로 자기 관련 기술이 보급되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 광주 지역에도 청자와 분청사기를 함께 제작하는 자기소가 등장하였다. 분청사기는 15세기 중반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이후 백자와 함께 제작되다가 16세기 중반 이후에는 백자로 대체되었다.

[특징]

분청사기는 자기 표면에 인화(印花), 상감(象嵌), 박지(剝地), 백토분장(白土粉粧), 조화(彫花), 철화(鐵畵) 등으로 장식한 것을 전부 포함한다. 이는 분청사기의 발전 순서와도 관련되는데, 초기에는 문양을 새긴 도장 같은 도구로 마르지 않은 그릇 표면을 찍은 뒤 백토로 분장하는 인화기법(印畫技法)과 무늬를 선이나 면으로 파고 백토를 상감하는 상감기법(象嵌技法)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청자 제작에 사용된 기술이 분청사기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차 백토분장 후 무늬를 새기는 것으로 단순화시킨 음각기법이나 새긴 무늬의 배경을 긁어내어 무늬만 하얗게 남기는 박지기법(剝地技法), 분장 후 철사(鐵砂)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철화기법(鐵畵技法), 귀얄을 사용하여 백토를 바른 귀얄기법, 백토 물에 그릇 전체를 덤벙 넣어 분장하는 덤벙기법 등이 나타난다.

기형상으로도 분청사기는 청자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는데, 제기류를 포함하는 금속기(金屬器) 대부분을 분청사기로 제작하였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는 대표적인 분청사기 요지인 광주 충효동 요지(光州忠孝洞窯址)에서도 확인되는데, 금속기를 모방한 제기와 상형 제기(像形祭器), 향로, 묘지(墓誌)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광주의 분청사기 요지]

광주광역시 일대에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청자와 분청사기를 제작하던 요지가 다수 분포하였다. 현재 명확하게 확인된 곳은 광주 충효동 요지장수동 수남 도자 가마터 등이지만, 지표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된 일부 유물산포지의 경우 추가 조사를 하면 요지로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광주 충효동 요지는 1963년과 1991년 두 차례 대규모 발굴을 통해 가마터와 퇴적층[폐기층],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곳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공납용 자기소로 언급된 곳이기도 하여, 적어도 1432년 이전부터 요업을 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그리고 성화(成化)[1465~1487년 사용된 명나라의 연호]명 초벌구이 조각 등을 통해 볼 때 15세기 후반까지 요업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백자 요지와 백자 조각들로 미루어 16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요업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장수동 수남 도자 가마터는 본격적인 발굴 조사는 시행되지 않았지만, 지표 조사 결과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이 가마터에서는 청자와 분청사기 유물이 확인되었는데, 어등산의 나무를 원료로 하는 분청사기 가마가 한동안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신창동 유적지 배후의 월봉산 자락에서도 내섬(內贍)이라는 글이 쓰인 분청사기 조각과 백자 등이 확인된 바 있어 요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각화동 각화 유물산포지도천동 작은도랑실 유물산포지 등에서도 다양한 분청사기 조각이 조사되어 인근에 요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주의 분청사기]

광주 지역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에는 광주 충효동 요지에서 발굴되어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 중인 ‘분청사기 ‘어존’ 글씨가 있는 잔’, ‘분청사기 표주박모양 병’, ‘분청사기 조화무늬 장군’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국립광주박물관에는 1991년 발굴 조사 당시 광주 충효동 요지에서 수습된 분청사기와 백자 조각이 톤 단위로 소장되어 있다.

광주 지역에서 출토되거나 확인된 분청사기 가운데 지역 내 생산이 유력한 유물로는 국립광주박물관 소장의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粉靑沙器象嵌景泰五年銘李先齊墓誌)’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소장의 ‘분청사기전라도(전라도)명항아리’가 있다.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는 독특한 기형과 명문을 통한 명확한 연대, 상감기법의 사용 등으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2018년 6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한편,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소장의 ‘분청사기전라도(전라도)명항아리’는 안정되고 완성도 높은 기형과 ‘전라도’라는 명문으로 인해 1998년 2월 12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로 보아 조선 전기에 광주 지역은 고품질의 공납용 분청사기를 제작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자기 문화를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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