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무등양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636
한자 無等洋襪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독립로204번길 17[양동 13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장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5년연표보기 - 무등양말 설립
현 소재지 무등양말 - 광주광역시 서구 독립로204번길 17[양동 131]지도보기
성격 기업체
설립자 양태승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있는 양말 제조업체.

[개설]

무등양말은 1935년 광주 계유구락부 회원이며 민족계 학교인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맡았던 양태승이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과 함께 민족 자본으로 설립한 기업이다. 당시 일본 종방[현재 일신·전남방직의 전신]이 광주에 공장을 짓자 방직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낙면[면사를 방적할 때 생기는 쓰레기 솜]과 낙사[면사를 방직할 때 생기는 쓰레기 실]를 원료로 하는 양말, 메리야스, 장갑 등을 만드는 공장도 활기를 띠었다.

[변천]

1935년 양태승 등에 의해 무등양말이 설립되었다. 1936년 11월 자본금 1만 5000원의 합명 회사로 경영 체제를 개편하여 대표에 김시중이 취임하였다. 이후 고광표가 이어 받았고, 이때부터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전국에 판로를 갖는 광주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매일경제』 1984년 1월 기사에는 “전남 광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무등양말이 전국 주요 도시에 상설 전시 판매장을 개설하기로 하고 1차로 서울 시내 을지로3가 지하상가에 전시 판매장을 설치하였다. 1935년 설립된 무등양말은 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지난해 6월에는 단위 공장으로는 동양 최대 시설을 갖췄다.”고 보도하였다.

이어 1987년 2월 기사에는 “무등양말이 당해 수출 목표를 200만 달러로 책정하며 수출 활동을 대폭 강화하기로 하였다.”며 “전년도인 1986년 일본에 100만 달러 실적을 올린 것에 힘입어 수출 증대에 더욱 박차를 가해 연말까지 미국, 유럽, 동남아 등지에 200만 달러를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서울사무소에 자체 무역부를 신설, 직수출 체제를 갖추었다.”고 보도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스타킹을 비롯한 양말류의 제조와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황]

16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