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조사제문다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842
한자 列聖朝賜祭文茶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원산동 947-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장처 포충사 -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원산동 947-4]지도보기
성격 현판
재질 나무
크기(높이,길이,너비) 1. 142㎝[높이]|41.5㎝[너비]|2. 101.5㎝[높이]|48㎝[너비]
소유자 포충사
관리자 포충사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에 있는 국왕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

[개설]

「열성조사제문다록(列聖朝賜祭文茶錄)」은 사액(賜額) 사우(祠宇)인 포충사 제향 때 역대 국왕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 2개이다. 포충사 유물 전시관에 보관된 사제문 현판은 1603년(선조 36), 1605년(선조 38), 1623년(인조 1), 1734년(영조 10), 1772년(영조 48)에 내린 사제문 5종이다. 1603년 사제문은 임진왜란·정유재란 직후 사액 당시에 내린 사제문으로 의의가 있다. 『포충사지(褒忠祠誌)』에는 1603년과 1734년의 사제문이 실려 있다. 또다른 현판은 1796(정조 20), 1812년(순조 12), 1832년(순조 32), 1892년(고종 29), 4종의 사제문이 새겨져 있다. 『포충사지』에는 1812년과 1892년의 사제문이 실려 있다.

[형태]

「열성조사제문다록」은 액자 형식의 판재에 그렸다.

[특징]

조선시대 사액 사우에 역대 국왕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으로, 변죽에 칠보무늬를 그려 넣고 가운데에는 태극무늬를 그렸으며, 양쪽에 봉두(鳳頭)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현황]

포충사임진왜란 때 호남 의병의 선봉장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아들 고종후(高從厚)[1554~1593], 고인후(高因厚)[1561~1592], 유팽로(柳彭老)[1554~1592], 안영(安瑛)[?~1592]을 배향한 사우로 1601년 창건하였고 1603년에 사액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사액(賜額) 사우(祠宇)에 6명의 국왕이 내린 9종의 사제문으로, 사제문 형식과 내용을 알 수 있고 사액 사우에 대한 조정의 예우를 알 수 있어 역사적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