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시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511
한자 社町市場
영어공식명칭 Sajung Market
이칭/별칭 교사리시장,읍영시장,부영시장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장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32년 2월 3일연표보기 - 사정시장 개설
성격 상업 시설
면적 27,933m²[8,450평]|170칸[점포]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일제강점기 때 개설되었다가 사라진 재래시장.

[개설]

사정시장은 일제강점기 때 1932년 큰 장과 작은 장을 합쳐 광주시 사동 37번지 매립지에 개설되었다가, 1941년 천정[지금의 양동]으로 이전된 시장을 말한다.

[건립 경위]

사정시장은 1932년 2월 3일 개설되었다. 본래 교사리시장으로 불리우다가 얼마 뒤 해당 지역이 광주읍에 편입되어 사정(社町)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사정시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1932년 광주천의 물줄기를 직선으로 만들고 강둑을 쌓는 하천정리사업을 하면서 시장을 정비한다는 구실로 큰 장과 작은 장을 합쳐 사정[사동의 일제 때 명칭]시장을 개설하게 되었다. 이때 개설 부지 8,450평에 점포 170칸을 지어 소위 근대적 시장으로 정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정시장은 한편 광주읍에서 관할한다는 뜻으로 읍영시장으로, 1935년 광주읍이 지금의 시에 해당하는 광주부로 승격된 뒤에는 부영시장으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변천]

사정시장구동 37번지 일대에 있었는데, 광주공원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 저지대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광주공원에 일본 신사(神社)가 세워졌는데, 일제시대에는 신사가 있는 광주공원을 성역화한다며 사정시장을 지금의 양동시장인 천정 공설운동장 자리로 옮겼다. 이때의 점포 수는 366칸으로서 이전 사정시장의 470칸보다 무려 100여 점포가 줄어들었다. 사정시장이 들어서자 시장으로 통하는 거리를 중심으로 상가가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곳이 지금의 무등상호신용금고와 동화은행[구 군사원호청] 뒷골목으로, 여기에는 유명한 일본인 잡화도매상인 스기우라상점, 마도바상점과 광주 최초의 연탄도매상인 오다상회 등의 거상들이 커다란 도매상가를 이루었다. 호남지방 굴지의 규모로 1938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연간 거래액이 226만 5871엔에 달하였다. 이는 남한에서 일곱 번째 규모이며, 당시 일본인 전용시장인 명치정시장의 거의 9배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구성]

사정시장은 장날을 큰장, 작은장을 합쳐 2일, 4일, 7일, 9일로 단일화하였다. 점포도 업종별로 포목전, 황호전, 양품전, 잡화전, 조끼와 피복전, 건어물전, 곡물전, 고무신전, 목물전, 진어물[생선]전, 육류전, 사기전, 옹기전, 유기전 등으로 구분되었다. 주막은 시장 입구 오른쪽에 있었으며, 가축시장은 한일극장 뒤편으로 분리시켜 2일, 7일 큰장날에만 서게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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