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49
한자 光木間良民虐殺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1월 12일연표보기 - 광목간 양민 학살지 5.18 사적지 제15호 지정
성격 옛터
문화재 지정 번호 5.18 사적지 제15호

[정의]

1980년 5월 24일 계엄군이 오인 사격하면서 계엄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으며, 계엄군이 민간 주민에게 무차별적 보복을 해 무고한 시민들이 다수 희생된 곳.

[개설]

1980년 5월 24일 새벽 1시 30분 주남마을에 주둔해 있던 제7공수여단과 제11공수여단은 주둔지를 제20사단 61연대에 인계하고 광주비행장으로 이동하여 기동타격대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20사단 61연대는 효천역 봉쇄 지역을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보병학교 및 기갑학교 병력에 인계하고 주남마을로 이동하였다.

아침 9시경 제7공수여단은 헬기로 광주비행장으로 이동하고, 제11공수여단은 제20사단 61연대와 임무 교대를 마치고 육로로 이동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제11공수여단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56대의 군용 트럭에 분승하여 전라남도 광주시 지원동과 용산동 도로를 따라 진월동과 송암동을 거쳐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 외곽도로를 타고 광주비행장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오후 1시 30분경 제11공수여단 선두가 광주~목포 간 도로에 인접한 광주효덕초등학교 삼거리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트럭을 타고 그곳에 와 있던 무장시위대 10여 명을 발견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500여 미터 정도 뒤따라가던 제11공수여단 병력은 총소리를 듣고 주변을 향해 무조건 총격을 퍼부었다. 이때 진월동 원제마을 앞 원제저수지에서 목욕을 하던 어린이들에게조차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중학교 1학년 방광범이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또한, 공수부대원들은 광주효덕초등학교 부근 마을 어귀에서 놀던 어린이들에게도 총격을 가하여 광주효덕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가 총상으로 사망하였다.

오후 1시 55분경 제11공수여단이 광주효덕초등학교 삼거리를 지나 송암일반산업단지 앞 도로에 접어들었는데, 근처 야산 좌우에 매복 중인 육군보병학교 교도대가 기습 공격을 하였다. 육군보병학교 교도대는 시민군들이 무리를 지어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이곳에서 제11공수여단과 육군보병학교 교도대가 서로 적으로 오인하여 전투를 벌인 것이다.

이후 제11공수여단 공수부대원들은 근처 마을과 민가에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또한 인근 마을로 뛰어들어가 주민들을 상대로 보복을 시작해 다수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위치]

광목간 양민 학살지[진월동, 송암동]는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지하차도 일대에 해당되며, 5.18민주화운동 당시 나주군과 목포시로 나가는 길목이었다. 현재 송하동 삼익아파트 버스 정류장에 사적지 조형물이 있다.

[의의와 평가]

광목간 양민 학살지는 화순군 가는 길에 있는 주남마을과 더불어 대표적인 양민 학살 장소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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