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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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詠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풍영정길 21[신창동 852-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영미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8년 - 풍영정 지붕 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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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2월 29일![]() |
현 소재지 | 풍영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풍영정길 21[신창동 852-1]![]() |
원소재지 | 풍영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풍영정길 21[신창동 852-1] |
성격 | 누정 |
양식 | 골기와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광산김씨 문중 |
관리자 | 광산김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풍영정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칠계공파 문중의 자료에 의하면 칠계(漆溪) 김언거(金彦据)[1503~1584]가 승문원 판교 시절인 1558년에 지었다고 한다. 송인수(宋麟壽)와 송순(宋純), 그리고 송흠(宋欽)의 시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1548년에 쓴 『김계진 시첩(金季珍詩帖)』의 발문을 살펴보면 풍영정은 이미 1548년 이전에 지어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풍영정은 김언거가 여러 벼슬을 거친 뒤 물러나 이곳에서 여러 문인 학자들과 어울리며 생활한 곳이다.
1879년, 1924년의『광주읍지』에는 풍영정이 주의 서북쪽 20리에 있다고 전한다. 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선창산(仙滄山)과 극락강(極樂江)이 마주치는 강변의 대지 위, 광주역에서 운남동 방면으로 승용차로는 20분, 광신대교에서 도보로는 5분 거리에 있다.
풍영정은 초기에 12채가 있었지만 11채는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소실되고 풍영정 하나만 남아 있으며, 1948년 김언거의 후손들이 지붕을 수리하였다. 1984년 2월 29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되었다.
풍영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강암 기단 위에 주초는 덤벙주초, 기둥은 배흘림 원주기둥을 세웠다.
풍영정은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이며, 영산강 8경 중 광산구에서 볼 수 있는 제7경으로 극락강이 보이는 정자인데 강이 줄어들고 주변에 도로가 생겼다.
풍영정은 주인 김언거의 원운(原韻) 이외에도 지지당(知止堂) 송흠(宋欽), 퇴계(退溪) 이황(李滉),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등 여러 문인이 시를 남기는 등 60여 개에 달하는 현판이 걸려 있어 풍영정이 호남 지방 정자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