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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956
한자
영어공식명칭 Poetry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민구

[정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근대 이후에 형성되고 발전한 문학 가운데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 양식.

[개설]

시(詩)는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정서와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 양식이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현대시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언어예술로서 서정시의 전통과 민족적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민족운동이라는 입장에서 식민지 상황과 근대화의 물결에 대응하며 발전하였다. 아울러 광주 지역의 현대시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심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중심 도시로서 현실과 사회 문제에 대한 반영과 극복을 위한 치열한 의지를 견지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해방 이전 광주의 현대시]

해방 이전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최초로 시작(時作) 활동을 한 시인으로 김태오(金泰午)[1903~1976]가 있다. 김태오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상황에서 우리의 언어와 민족정신을 지키기 위한 소년 운동과 동요 운동을 전개하면서 틈틈이 시와 시조를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새벽」, 「달밤」, 「고향」 등이 있다. 이 무렵 박용철(朴龍喆)[1904~1938]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시문학파를 결성하고 『시문학』을 창간, 발행하였다. 우리말로 시를 써서 민족의 언어를 완성하자는 목적을 지닌 시 전문지의 탄생은 광주는 물론 한국 시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요 작품으로 「떠나가는 배」, 「싸늘한 이마」 등이 있다. 아울러 이 시기 김현승(金顯承)[1913~1975]이 등단하면서 광주의 현대시가 발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나 일제의 전시 동원 체제하에서 시를 쓰지 않으면서 해방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해방 직후 광주의 현대시]

해방 직후인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라남도 광주의 현대시도 공백기였다. 이 시기 『광주신보』의 전신인 『조선중보』에 이해동이 시로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김현승도 8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펜을 들어 시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해방기 이후 광주의 현대시 흐름은 민족관의 확립과 문화 향상을 기치로 내걸고 1950년 1월에 창간한 『호남공론』, 다시 제호를 바꾼 『젊은이』로 이어졌다. 시인으로 김현승·이동주·이수복·박봉우·정현웅·박성룡·주명영 등이 참여하였다. 한편 6.25전쟁기에 광주에서 창간된 『신문학』은 순문예지를 표방한 잡지였으며, 광주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시 문학의 공백기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현승·박흡·이동주·이석봉·이수복 등이 시를 발표하였다. 이 무렵 목포 해군 정훈실에서 발간한 기관지로 『전우』, 『갈매기』가 있었으며, 전라남도 광주의 김현승·이동주·이수복·박흡·김악·박정온·이석봉 등이 필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1952년 목포에서 발간된 『시정신』, 『시와산문』에도 광주의 시인들이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1953년 광주고등학교 문예부가 광주 최초의 학생 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지 『상록집』을 발간하였다.

[1960년대 광주의 현대시]

1960년대 벽두부터 일어난 4.19혁명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광주에는 문학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였다. 1950년대 동인지나 문예지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창작 열기로 문학청년들이 대거 등장하였으며 이는 등단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에 등단한 시인으로 이성부·조태일·손광은·박홍원·범대순·문병란·임보·강인한·이향아·김종·김만옥·문도채·김재흔·김준태·진헌성·양성우 등이 있다. 1967년에 결성된 원탁문학회[이후 원탁시회로 변경]는 동인지 『원탁문학』[이후 『원탁시』로 변경]을 발간한 이래로 2022년 1월 기준 최장수 동인지로 기록되고 있다. 창간 동인으로 권일송·문병란·박홍원·범대순·손광은·윤삼하·정현웅·김현곤·송선영·허연·황길현 등이 이름을 올렸다.

[1970년대 광주의 현대시]

1970년대 전라남도 광주의 시인들은 시대적 암울함 속에서도 서정적 건강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한국문인협회 전남지부는 1974년 『전남문단』 창간호를 발간하였으며, 허연·차의섭·진헌성·주기운·정재완·정소파·전원범·이영권·오명규·양성우·송선영·범대순·박홍원·문병란·문도채·김현곤·김만옥 등이 시를 발표하면서 유신정권의 겨울공화국에서 광주의 시인들이 건재함을 보여 주었다. 1970년대 시국의 현실을 논의하고 염려하는 문인들이 모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하였으며, 유신체제에 맞서 「자유실천문인협의 101인 선언」을 발표하였다. 「자유실천문인협의 101인 선언」에는 강태열·김남주·박봉우·문병란·이성부·조태일·양성우 등이 참여하였다.

[1980년대 광주의 현대시]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광주의 현대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광주의 시인들은 시대가 주는 암울과 침체에 빠지지 않고 인간과 자연, 현실과 사회에 대한 서정과 사상을 다양한 동인 활동 및 작품 활동을 통해 담아내고자 노력하였다. 이 시기 이영진·박주관·박몽구·곽재구·나종영 등이 주축이 된 『오월시』 동인은 오월 광주의 체험을 시화하였으며, 고정희·허형만·강인한·김종·국효문·허형만·김준태 등이 참여한 『목요시』 동인들은 역사의 희망과 구원의 길을 모색하였다. 박선욱·김남주·김하늬·최승권·임동확 등은 민족작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박주관·나종영·나해철·곽재구·황지우 등의 시는 전국 문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86년 광주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광주문인협회가 구성되었으며 기관지 『광주문학』을 발간하였다. 초대 회장은 손광은이 맡았으며 광주문학상을 제정하였다.

[1990년대 광주의 현대시]

1990년대 문민정부의 도래와 함께 다양한 문학 동인이 등장하면서 문학잡지도 풍성하게 발간되었다. 1992년 박형철이 발행인을 맡고 전원범이 주간을 맡은 순수 문예지 『문학춘추』가 창간되었다. 1994년 광주시인협회가 창립되었으며 기관지 『광주시문학』을 발행하였다. 김현곤·김종·송수권·주전이·경철 등이 참여하였다. 1996년에는 강경호가 발행인을 맡고 고재종이 주간을 맡은 계간지 『시와 사람』이 간행되었다. 1996년 『광주일보』 신춘문학회가 창립되었으며 기관지 『금남로 가는 길』을 발행하였다. 전원범·손광은·김선태 등이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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