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동 선창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86
한자 新佳洞船倉-堂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45년 8월연표보기 - 신가동 선창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아버지 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선창마을 뒷산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 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선창마을 입구 시정 옆지도보기
성격 마을 신앙|동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밤
신당/신체 할아버지 당산- 소나무|할머니 당산- 버드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 있었던 선창마을에서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개설]

신가동 선창마을 당산제선창마을에서 정월 14일 밤에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이다. 선창마을은 조선시대 밀양손씨(密陽孫氏)가 터를 잡아 마을이 성촌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옛날 풍영천(風詠川) 물이 자주 범람하여 마을 풍경이 마치 배가 드나드는 선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였다.

[연원 및 변천]

일제강점기까지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중단된 시기와 당산제의 유래, 당산의 성격과 신체(神體) 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96년 신가동 주택단지 개발 당시 광주직할시립민속박물관[지금의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서 조사된 내용에 일제강점기 때까지 마을에서 당산제를 모셨다는 기록이 간략하게 조사되었다. 그러다가 8.15광복 후 마을의 반촌교회 목사가 당산나무를 베어버린 뒤부터 지내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신당/신체의 형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선창마을의 당산은 두 군데 있었다고 한다. 마을 뒷산에는 할아버지 당산[숫당산·소나무·천룡], 마을 입구 시정(詩亭) 옆에 할머니 당산[암당산·버드나무]이 있었다.

[절차]

정월 14일 밤에 진행하였다. 먼저 할아버지 당산에서 제를 시작하여, 할머니 당산으로 옮겨서 제사를 모셨다. 당산제가 끝나면 통시암[공동우물]에서 샘굿을 하였다.

[현황]

8.15광복 이후 중단된 뒤 지금까지 제를 지내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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