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동 동작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53
한자 牛山洞東作-堂山祭
이칭/별칭 우산동 동작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부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90년대 말 - 우산동 동작마을 당산제 중단
재개 시기/일시 2000년대 초 - 우산동 동작마을 당산제 재개
의례 장소 상천룡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동작마을 뒤쪽 산등성이지도보기
의례 장소 중천룡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동작마을 동쪽 중턱지도보기
의례 장소 샘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동작마을 샘거리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상천룡당산[황토 제단]|중천룡당산[느티나무]|샘당산[공동샘]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동작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우산동 동작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동작마을의 상천룡당산, 중천룡당산, 샘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1912년 마을 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일대는 우산면 동작리, 서작리, 신기리, 향약리, 당사리, 마지면 운림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산동으로 통합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당산제는 1990년대까지 자연마을별로 모셔졌다. 이후 도시 개발 여파로 자연마을이 와해되면서, 우산동 당산제로 통합 운영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동작마을의 당산은 상천룡당산, 중천룡당산, 샘당산의 세 곳이다. 상천룡당산은 서작마을의 할아버지당산에서 100여m 떨어진 곳인 마을 뒤쪽 산등성이에 있었다. 황토로 제단을 쌓은 형태로 당산나무는 없다. 중천룡당산은 마을 동쪽의 중턱에 뿌리내린 느티나무였는데, 태풍으로 쓰러진 후 작은 느티나무를 신체로 여겼다. 당산나무의 밑둥에는 황토로 쌓은 제단이 있었다. 샘당산은 샘거리라고 불리는 자리에 있던 마을 공동샘이었다. 1993년 조사 시 주변의 형상이 너무 변하여 상천룡당산, 중천룡당산, 샘당산 등이 모두 훼손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절차]

우산동 동작마을 당산제는 매년 정월 초에 마을회의를 열어 화주 2명을 제관(祭官)으로 선정한다. 특히 그해 결혼을 하거나 신혼인 남성 2명을 뽑아 화주를 돕도록 한다. 화주는 부정한 곳을 출입하지 않아야 하고, 목욕재계 후 음식을 준비하며 그 물은 반드시 공동샘의 물로 한다. 축관도 3개월간 몸을 삼가야 한다. 제비(祭費)는 과거에는 집안의 남성 수만큼 걷다가, 호를 기준으로 거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제물(祭物)은 서작마을과 같은데, 특히 흰 털이 없는 새끼돼지를 잡아 머리를 제물로 사용한다. 제기(祭器)는 모두 새것으로 준비하고, 사용 후에는 화주가 소유한다. 제차(祭次)도 서작마을과 유사하다. 동작은 서작의 당산할아버지와 대칭되는 당산할머니였으므로 서작에서 제를 시작한 후에 시작하였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축관이 읊는데, 서작마을의 축문과 비슷하지만 자구(字句)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가 없다.

[부대 행사]

당산제를 지내고 사흘이 지나면 삼우제를 올리는 형식을 취하고 화주집에서 음복과 마을회의를 한다. 마을의 젊은 사람들은 삼우제 아침에 당산을 목욕시킨다고 하여 황토로 쌓은 제단에 물을 뿌리고 단을 각이 지게 다듬는다.

[현황]

1990년대까지 우산동의 자연마을별로 동작마을 당산제가 모셔졌으나, 이후 자연마을이 와해되면서 우산동 당산제로 통합 운영되고 있다. 우산동 당산제는 '우산동 정월대보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광산구의 후원을 통해 개최되고 있는데, '정월대보름 우산동 주민화합 민속축제', '우산골 달맞이 축제' 등의 세부 행사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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