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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힌츠페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78
영어공식명칭 Jürgen Hinzpeter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7년 7월 6일연표보기 - 위르겐 힌츠페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제1공영방송 함부르크 지부 카메라맨으로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위르겐 힌츠페터 동아시아 지부 발령
활동 시기/일시 1969년 - 위르겐 힌츠페터 베트남전쟁 종군기자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73~1989년 - 위르겐 힌츠페터 일본 도쿄 특파원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74년 - 위르겐 힌츠페터 정의구현사제단 출범 취재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19일 - 위르겐 힌츠페터 5.18민주화운동 취재차 한국 입국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20일~23일 - 위르겐 힌츠페터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5.18민주화운동 취재
활동 시기/일시 1980년 9월 - 위르겐 힌츠페터 촬영 영상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 방송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귀국
활동 시기/일시 1995년 - 위르겐 힌츠페터 은퇴
활동 시기/일시 2003년 - 위르겐 힌츠페터 제2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2005년 - 위르겐 힌츠페터 한국카메라기자협회 특별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2016년 1월 25일연표보기 - 위르겐 힌츠페터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7년 - 영화 「택시운전사」 개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8년 - 다큐멘터리 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 개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8년 - 위르겐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
출생지 독일
거주|이주지 거주지 - 독일 함부르크|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라체부르크
활동지 독일 제1공영방송 동아시아 지부 -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활동지 일본 도쿄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지도보기
성격 기자|언론인
성별
대표 경력 독일 제1공영방송 카메라맨|독일 제1공영방송 동아시아 지부 근무|독일 제1공영방송 일본 도쿄 특파원

[정의]

1980년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기록 영상을 제작하여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독일의 기자.

[개설]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1937~2016]는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카메라맨으로 입사하여 1963년 홍콩의 동아시아 지부로 발령받았다. 이후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에 취재차 들어오기도 하였다. 한국에서의 첫 취재는 1974년 9월 26일 명동에서 있었던 정의구현사제단 출범 미사였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있을 때 한국의 5.18민주화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전라남도 광주시로 잠입하여 1980년 5월 20일부터 5월 23일까지의 영상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독일 제1공영방송으로 보내진 5.18민주화운동 영상은 전 세계에 보도되어 진실이 알려졌다. 위르겐 힌츠페터의 아내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여하여 위르겐 힌츠페터의 뜻을 기리고 있다.

[활동 사항]

1980년 봄, 한국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연일 계속되었다. 5월 15일 이후 시위는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으나 전라남도 광주시에서는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러자 신군부는 광주시에 계엄군을 파견하여 학생뿐 아니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독일 제1공영방송국 일본 도쿄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는 일본 동아시아선교회 소속 파울 슈나이스(Paul Schneiss) 목사로부터 한국의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위르겐 힌츠페터광주시의 민주화운동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하였다. 하지만 공식적인 취재로 광주시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상황임을 직감한 위르겐 힌츠페터는 해외공보원에 신고하지 않고 비밀리에 광주행을 시도하였다. 이때 서울특별시에서 택시기사를 하고 있던 김사복이 위르겐 힌츠페터와 동행하며 위르겐 힌츠페터를 도왔다.

1980년 5월 20일 오전에 광주시 진입에 성공한 위르겐 힌츠페터는 시위대와 계엄군의 모습을 낱낱이 영상에 담았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영상을 찍다가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5월 23일까지의 상황을 기록한 영상을 일본으로 돌아간 뒤 독일 본사로 보냈다.

독일 제1공영방송은 5.18민주화운동 상황을 최초로 보도하였다. 신군부가 언론을 통제하며 감추려고 하였던 진실을 독일인 기자와 독일 방송이 폭로한 것이다. 1980년 9월에는 위르겐 힌츠페터의 취재를 바탕으로 제작한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하였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대한민국에서도 비밀리에 상영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이 끝난 뒤에도 위르겐 힌츠페터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86년 11월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취재를 하던 중 사복경찰에게 구타당해 목과 척추를 크게 다치기도 하였다. 1989년 위르겐 힌츠페터는 독일로 돌아갔고, 1995년 은퇴하여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라체부르크에서 생활하다가 2016년 사망하였다. 광주에 묻히기를 희망한다는 위르겐 힌츠페터의 유지(遺旨)에 따라 2016년 사망 후 손톱과 머리카락 등을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하였다.

[묘소]

위르겐 힌츠페터 사망 후 손톱과 머리카락 등을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하였으며, 2005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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