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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금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86
한자 洪今突
영어공식명칭 Hong Geumdo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효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 2월 27일연표보기 - 홍금돌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홍금돌 숭일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홍금돌 광주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19년 8월 13일 - 홍금돌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20년 2월 14일 - 홍금돌 대구형무소 만기 출옥
추모 시기/일시 2019년연표보기 - 홍금돌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
학교|수학지 광주숭일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모룡대길 40[일곡동 46-24]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숭일학교 학생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출신의 독립유공자.

[개설]

홍금돌(洪今突)[1900~?]은 1900년 2월 27일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출생하였다. 20세 때인 191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있었던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에서는 김복현(金福鉉) 등을 주축으로 하여 약 1000여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나 손, 모자를 흔들며 광주 지역 시가지를 따라 줄지어 행진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홍금돌최병준(崔炳俊) 등으로부터 미리 교부받은 유인물을 이달근(李達根) 등과 함께 중심 시가에서 뿌리며 "조선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쳤다. 유인물은 손병희(孫秉熙) 이하 33인이 연서한 「독립선언서」와 「경고, 우리 2000만 동포」라는 제목의 경고문, 그리고 조선의 독립을 구가(謳歌)한 「독립가」였다. 홍금돌은 당시 나이 20세로 숭일학교 학생이었다.

홍금돌은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으며, 「보안법」 위반으로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인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도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20년 2월 14일까지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9년 대한민국 정부는 황금돌의 공훈을 기려 건국포장(建國褒章)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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