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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33
한자 光州三一獨立運動記念塔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운암동 산 42-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광주 3.1독립운동 기념탑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11월 - 광주 3.1독립운동 기념탑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지정
현 소재지 광주 3.1독립운동 기념탑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운암동 산 42-3]지도보기
성격 기념탑
크기(높이) 17.5m
관리자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정의]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 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들을 기리기 위하여 1986년 11월 28일 광주직할시에서 주관하여 건립한 기념탑.

[건립 경위]

광주 3.1독립운동 기념탑은 광주인들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 3.1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혼을 새겨 후세에 선열들의 얼을 계승하고자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중외공원에 있다.

[형태]

부지면적 625㎡에 높이 17.5m의 기념탑이다. 탑신에는 '광주삼일독립운동기념탑'이라고 한글로 새기고, 기단의 앞면에는 일제에 항거하는 만세운동 당시의 상황을 부조로 조각하였다. 최상부는 타오르는 횃불을 형상화한 조형물로 장식하였다.

[금석문]

금석문의 글은 김정호가 짓고 하남호가 글씨를 썼으며, 고정수가 제작하였다. 쓰여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국이 일본제국주의에 식민화된 지 10년째 나던 1919년 이해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가 울려 퍼지고 3월 10일 광주의 불로동 냇가 모래밭 장터에서도 만세의 함성이 터졌다.

시민과 학생 수천명이 모여 독립운동가를 부르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성난 기마헌병들이 칼을 휘들렀어도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를 외쳐대며 경찰서 마당까지 진행했다.

11일에도 13일에도 만세를 계속했다. 이 만세로 일본 경찰에 끌려간 이가 수백명이었고 그 중 35명은 여섯달부터 세해를 징역 살았다. 우리는 그 날의 광주만세를 영원토록 기억해 민족의 얼을 삼고자 그 내력을 새겨 이 탑을 세운다."

[현황]

2002년 11월에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후손들에게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자주독립을 지킨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광주학생독립운동 90년사』(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2019)
  • 국가보훈처 현충시설정보서비스(http://mfis.mpva.go.kr)
  • 광주광역시 시청각자료실(http://gjarchive.kr)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http://www.gjsg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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