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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판소리서편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21
한자 南道-西便制
영어공식명칭 Namdo-Pansori Seopyeonje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형성 시기/일시 1989년 - 남도판소리서편제 형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89년 3월 20일연표보기 - 남도판소리서편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 지정
성격 판소리
토리 육자배기
가창자/시연자 안채봉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서편제 바탕의 판소리.

[개설]

남도판소리서편제는 1989년 안채봉을 보유자로 인정하면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특장(特長)[특별히 뛰어남]은 「춘향가」이다. 안채봉이 전승한 「춘향가」는 ‘김세종→김찬업→정응민→안채봉’으로 전승되는 계보를 잇는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김세종(金世宗)은 전라북도 순창 출생으로 헌종·철종·고종 3대 간의 인물로 동편제의 대가였다. 전라북도 고창의 신재효 문하에서 지침을 받았고, 학문과 지식이 넉넉하고 창극에 대한 이론과 비평은 당대 독보적인 존재로 자타가 공인하였다고 한다.

[내용]

동편제 명창 김세종으로부터 전승된 「춘향가」는 동편제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정응민(鄭應珉)[1896~1963]에 의하여 여러 유파의 장점이 취합된 새로운 소리와 사설로 구성되어 전승되고 있다. 즉, 김세종제 「춘향가」는 동·서편의 소리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보성소리’로 칭하고 있으며, 전승하는 힘이 강한 소리 중 하나로 꼽힌다.

[현황]

남도판소리서편제 보유자는 안채봉(安彩鳳)[1920~1999]이다. 본명은 안성자이며, 전라남도 나주시의 세습무계[집안 내림에 의하여 무업을 승계함]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안채봉의 예술적 기질을 알아본 큰아버지가 양녀로 입적하여 권번에 들여보냈다. 12세 때 청진권번에서 임옥돌에게 단가와 「수궁가」 토막소리를 사사받았고, 14세 때부터 광주권번에서 박동실에게 「심청가」를 일부 배우고 박영구에게 검무와 살풀이춤을 익혔다. 3년 후 권번을 졸업하고 나서는 안기선, 조몽실에게 배웠다. 정응민을 만난 것은 37세 무렵으로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등을 배웠으나 완판 소리를 배웠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8.15 광복 후에는 목포국악원에서 소리 선생을 하였고, 1980년대부터 광주시립국악원, 광주예술고등학교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99년 안채봉의 사망 이후 신규 보유자는 인정되지 않고 현재는 종목만 유지되고 있다. 정영자, 김설행, 김영숙, 김지숙, 김현미, 성은희 등의 제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안채봉은 판소리 명창으로 보유자 인정을 받았으나, 대외적으로는 검무, 살풀이춤이 뛰어난 전통무용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남도판소리서편제는 광주광역시 승격 이후 처음으로 지정된 판소리 종목으로, 광주광역시의 무형문화재 보전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보유자 안채봉은 광주시립국악원, 광주예술학교 등에서 후학을 키우는 등 일제강점기부터 지속되어 온 광주 지역 판소리 역사와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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