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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20
한자 南道-
영어공식명칭 Namdo-Pansori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형성 시기/일시 1974년 - 남도판소리 형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5월 28일연표보기 - 남도판소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남도판소리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이관
성격 판소리
토리 육자배기
가창자/시연자 공대일|한애순|박정자|이은하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정의]

판소리 유파 중 서편제를 기반으로 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개설]

판소리는 전라도 말과 음악[육자배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편제 송흥록(宋興祿)[1801~1863, 전라북도 남원]과 서편제 박유전(朴裕全)[1835~1906, 전라남도 보성]으로부터 전국으로 뻗어 나갔다. 판소리는 오늘날 전라도의 대표적인 전통 예술로 정착되었다. 전라남도는 1974년 남도판소리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광주·전남 지역의 판소리 전승을 지속시키고자 하였다. 1986년 전라남도가 광주직할시와 전라남도로 분리되자, 광주에 거주하는 보유자를 둔 남도판소리가 광주직할시 무형문화재로 이관되었고, 1988년 광주광역시 승격 후에는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가 되었다.

[내용]

서편제는 섬진강의 서편 지역인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보성, 나주에서 전승되는 판소리 소리제를 이르며, 보성의 박유전이 전승한 소리를 근본으로 삼는다. 서편제는 동편제와는 대조적으로 기교적이며 계면조를 많이 사용하여 애절한 느낌을 준다. 정노식은 『조선창극사』에서 "계면조를 주장하여 연미부화(軟美浮華)하게 하고 구절 끝마침이 좀 지르르 끌어서 꽁지가 붙어 다닌다. 진진연(津津然) 육미적(肉味的)이다. 만수화란격(萬樹花爛格)이다."라고 표현하며, 서편제 소리의 특징을 "계면조 창법을 주로 구사하며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화려하게 노래한다."라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정노식의 표현은 "서편제는 발성의 끝을 길게 내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은 육류의 맛과 같고, 수많은 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화려한 격조를 지닌 소리"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현황]

1970년 「전라남도 문화재 보호조례」[조례 제425호]가 제정되고, 조례에 의거하여 남도판소리는 1974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가장 먼저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 보유자로 공대일(孔大一)[1911~1990]과 한애순(韓愛順)[1924~1994]이 인정되었는데, 특장(特長)[특별히 뛰어남]은 각각 「흥보가」와 「심청가」이다. 공대일한애순의 소리는 박유전으로부터 전승된 서편제 소리이다. 2005년에는 박정자, 2014년에는 이은하가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박정자는 유성준제 「수궁가」, 이은하는 정응민제 「춘향가」가 특장이다. 보유자 공대일·한애순·박정자는 이미 타계하였고, 현재는 이은하[본명 이순자]만 활동하고 있다. 이은하는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서 출생하였다. 정광수에게 토막소리를 배우며 입문하였고, 한애순에게 「심청가」를 사사한 바 있다. 34세 무렵 성창순을 스승으로 두면서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하였고, 성창순에게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사사받았다.

[의의와 평가]

남도판소리는 지방 무형문화재 조례가 제정된 후 무형문화재로서는 첫 번째로 지정되었고,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분리 후에는 광주의 무형문화재로 이관되는 등 광주광역시의 무형문화재 제도의 변천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 역사에 있어서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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