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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823
한자 麗水順天事件
이칭/별칭 여순사건,여순항쟁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8년 10월 19일연표보기 - 여수·순천 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48년 10월 27일연표보기 - 여수·순천 사건 종결
발단 시기/일시 1948년 10월 20일 - 광주 제5여단 사령부 비상소집 발령
전개 시기/일시 1948년 10월 21일 - 광주 제5여단 사령부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 설치

[정의]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해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전라남도 광주에 영향을 미친 사건.

[역사적 배경]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해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는 광주 제5여단에 예속된 제4연대 가운데 제1대대를 기본으로 하여 창설되었다. 제14연대는 광주의 제4연대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서로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이는 여수·순천 사건 발생 직후, 진압군으로 파견되었던 제4연대가 반란군이었던 제14연대에 합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경과]

1948년 10월 20일 새벽, 광주 제5여단 사령부는 제14연대의 봉기 소식을 듣게 되었다. 광주 제4연대 부연대장 박기병 소령은 육군 총사령부와 미군 고문관에 보고하는 한편, 비상소집을 발령하였다. 그리고 순천경찰서에서 군대 지원을 요청하자, 제4연대 1개 중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파견된 제4연대 중대장 김동희는 같은 군인끼리 싸우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봉기군과 경찰 간에 전투가 발생하자, 경찰의 배후를 공격하고 봉기군에 합류하였다.

순천을 장악한 봉기군은 이후 곧바로 지리산 산악지대로 들어가 유격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여수 제14연대의 계획이 광주를 점령한 후, 전주를 통해 서울로 진출하려는 것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다수의 기존 연구가 공통적으로 서술하고 있던 내용이지만, 최근에는 제14연대의 광주-서울 진출 계획이 진압군 측의 자의적인 판단에 불과하며, 오히려 지리산으로 입산하기 위해 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 1948년 10월 21일 광주 제5여단 사령부에는 송호성 준장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광주 내에는 학련(學聯)결사대[전국학생총연맹결사대]가 조직되었다. 학련결사대에 소속된 학생들은 군정보처와 밀접한 협조 아래, 광주 시내 좌익 학생들의 동향 보고와 광주에 잠입했을지 모를 폭동군에 대한 색출 작업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여수·순천 지구에 원정하여 학련 구성원을 재규합하고 군사령부 직속으로 정보 교환, 좌익 학생 색출, 진압군 후원[의복, 음식 및 침식 제공] 등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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