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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86
한자 高雲
영어공식명칭 Go Woon
이칭/별칭 언룡(彦龍),종룡(從龍),하천(霞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창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79년연표보기 - 고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07년 - 고운 생원 입격과 진사 입격
활동 시기/일시 1519년 - 고운 병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19년 - 고운 형조좌랑 임명
몰년 시기/일시 1530년연표보기 - 고운 사망
묘소|단소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산23-19 지도보기
성격 문관|화가
성별
본관 장흥(長興)
대표 관직 형조좌랑|전라도사|옥천현감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형조좌랑, 전라도사, 옥천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화가.

[가계]

고운(高雲)[1479~1530]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언룡(彦龍) 또는 종룡(從龍), 호는 하천(霞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상지(高尙志), 아버지는 고자검(高子儉), 어머니는 홍자아(洪自阿)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고운의 전처는 안만걸(安萬傑)의 딸, 후처는 이호선(李好善)의 딸 광산이씨(光山李氏)이다. 고운은 후처 이씨와의 사이에 아들 고맹영(高孟英)을 두었으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고운의 손자이다.

[활동 사항]

고운은 1507년(중종 2) 생원과 진사를 거쳐 1519년(중종 14) 별시 병과에 14위로 급제하여 형조좌랑(刑曹佐郞)에 임명됨으로써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전라도사(全羅都事)에 발탁되었다가 옥천현감(沃川縣監)을 맡던 중, 과거에 급제한 바로 그해에 발생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운이 조광조(趙光祖), 박상(朴祥)과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그런 연유로 『조선왕조실록』에는 고운에 대한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고운은 이후 박상 등과 교유하며 시를 쓰다가 1530년(중종 25)에 사망하였다.

고운은 과거 급제와 동시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관직 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하였지만, 이러한 울분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특히 고운은 호랑이 그림을 잘 그렸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백액대호(白額大虎)’이다. 이 그림은 소나무 밑에서 몸의 방향을 틀고 있는 사나운 눈매의 호랑이를 그린 것으로, 뜻을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의 감정을 표출한 것으로 평가된다.

[학문과 저술]

고운의 문집으로 『하천유집(霞川遺集)』이 있다. 모두 3권 1책으로, 1894년(고종 31)에 14대손인 고광유(高光維)가 간행하였으며, 권 말미에는 15대손인 고희석(高熺錫)의 발문이 있다. 대표적인 산문으로는 ‘백이론(伯夷論)’, ‘한고불영양의론(漢高不迎良醫論)’, ‘장량용한고론(張良用漢高論)’ 등이 있으며 중국의 고사를 동원하여 충·효·예 등을 논한 것이다.

[묘소]

고운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산23-19번지[송학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고운은 사후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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