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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36
한자 光州學生獨立運動女學徒紀念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158번길 8[장동 39-1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59년 11월 3일연표보기 -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 기념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4월 30일 - 광주학생운동발상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 기념비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5월 25일 - 학생독립운동 여학도기념 역사관 개관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7년 11월 3일 -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상 건립
현 소재지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 기념비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158번길 8[장동 39-12]지도보기
성격 기념비
관련 인물 박기옥|이금자|이광춘|박준채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6m[높이]
관리자 전남여자고등학교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6호[광주학생운동발상지]

[정의]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기념하기 위해 1959년에 건립한 기념비.

[건립 경위]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이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 3학년인 박기옥(朴己玉) 등을 희롱하는 모습을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등이 목격하며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 간의 충돌이 발단이 되었다.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 간의 충돌 사건에서 일본 경찰이 조선인 학생들을 구타하고 일본인 학생들 편만 들었다는 소식에 분노한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은 11월 3일 광주 시내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다. 11월 3일 시위는 전라남도 목포와 나주 등 광주 인접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3.1운동 이후 벌어진 가장 큰 규모의 항일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 기념비는 1959년 전남여자고등학교 동창회 중심의 '여학도기념비건립기성회'가 구성되어 전국 학생들의 성금을 모아 광주학생운동 30주년에 전남여자고등학교 내에 건립되었다.

[위치]

현재 전남여자고등학교 안에 있다.

[형태]

부지면적은 240㎡이며, 화강암으로 만든 울타리에 둘러싸인 4단의 기단 위에 높이 6m의 자연석을 깎아 비문을 새겼다.

[금석문]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 기념비 앞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쓴 휘호가 있다. 뒷면에는 "배달여자의 전통적 덕행을 이어, 맨손으로 왜정의 총칼에 항거하여, 독립의 한길을 닦은 여학도의 절의는 골 해의 거울이요, 잘 사람의 본이다."라는 최현배의 글이 새겨져 있다. 주춧돌 속에는 비의 혼을 담은 상자인 비혼궤(碑魂櫃)가 방부지로 싸여 담겨 있다. 비혼궤는 6×4×1치[寸]의 강철과 유리로 만든 2중 상자이다. 비혼궤 안에는 전국 여학도들이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활약상, 희생당한 일, 기념비 건립에 관한 기록을 담았다.

[현황]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 기념비전남여자고등학교 옛 본관은 '광주학생운동발상지'라는 이름으로 1999년 4월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2년에는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2011년 5월 25일 제84주년 개교 기념일에는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학생독립운동 여학도기념 역사관'이 새롭게 개관했으며, 2017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상'이 역사관 앞에 추가로 세워져 함께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했던 3개 학교 가운데 광주고등보통학교 건물은 교사(校舍) 재배치 사업으로 철거되었고, 광주공립농업학교[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건물은 학교 이전에 따라 택지로 변하였다. 전남여자고등학교 옛 본관 및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 기념비 일대는 광주학생운동의 현장이 고스란히 보존된 유일한 사적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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