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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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佳洞船倉-風水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수 |
전구간 | 신가동 선창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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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풍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 선창마을에 대한 풍수 해석.
선창마을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 있는 마을로 ‘배 형국’을 하고 있다.
1789년 『호구총수』에 '선창(仙倉)', 『한국지명총람』 광산군 비아면 신가리(新佳里)에 '선창리'가 보인다.
동쪽으로 영산강 본류 극락강, 서쪽으로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에서 발원한 풍영천이 흐르고 있다. 두 냇물의 사이 나지막한 능선에 선창마을이 에워싸여 있다. 산등성이가 둘러친 옴팍한 지형 탓에 주민들은 ‘배 형국’이란 인식을 하였다. 동네 앞 ‘점동골’은 누대에 걸쳐 온 문전옥답이다.
예로부터 함부로 우물을 파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전해졌다. 배밑창을 뚫는 행위는 마을 운세를 좀 먹는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모정 근처 ‘통시암[바가지시암]’이 유일한 식수 공급처였다. 들에는 또랑·개·오가리·수랑·짐대·버드·바우시암과 같은 샘들이 농업용수원이었다. 우물굴착을 금지하는 생활 규범은 식수용에만 적용되었다. 대부분 논이 물 부족이 심한 천수답이었기 때문이다. 빈번한 가뭄으로 기우제가 ‘무제등’에서 행하여지기도 하였다.
짐대시암에는 장대에 오리를 올려놓은 모습을 지닌 짐대[솟대]가 있었다. 배 형국에 돛대를 세워야 마을에 복이 깃든다고 믿어 세웠다고 한다. 예전 마을 앞에 긴 솔숲이 띠를 두루고 있어 길손이 안쪽 마을 모습을 쉬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촌전 마을숲이 배 형국에서 무사안녕과 번영을 기대하며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배 형국과 관련하여서는 ‘무너미고개’란 지명도 있다. 동네이름의 풀이 중 ‘배가 들고나던 마을’이란 뜻으로 ‘선창(船艙)’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물 부족과 관련된 풍수인식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