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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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有人示無等山歌求和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67년 - 강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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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18년 - 강항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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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한시 |
작가 | 강항 |
조선 시대 문신인 강항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유인시무등산가구화(有人示無等山歌求和)」를 지은 강항(姜沆)[1567~1618]의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강희맹(姜希孟)의 5대손이며, 아버지인 강극검(姜克儉)과 어머니인 김효손(金孝孫)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혼(成渾)과 신응시(辛應時)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3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공조·형조의 좌랑을 지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1600년에 귀국하였다. 일본에서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藤原醒窩]에게 조선의 주자학과 과거제도, 상례 등을 가르쳤고, 귀국 후에는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강항휘초(康沆彙抄)』, 『간양록(看羊錄)』, 『운제록(雲堤錄)』, 『강감회요(綱鑑會要)』, 『좌씨정화(左氏精華)』, 『문선찬주(文選纂註)』, 『수은집(睡隱集)』 등이 있다. 「유인시무등산가구화」는 『수은집』 제1권에 실려 있다.
「유인시무등산가구화」는 1구에 7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이다.
유인시무등산가구화(有人示無等山歌求和)[어떤 이가 「무등산 노래」로 화답시를 구하다]
층봉석일강반제(層峯昔日強攀躋)[그 옛날 층층 봉우리 힘겹게 올랐더니]/ 서석회암몽이미(瑞石回岩夢已迷)[서석에 두른 절벽 꿈처럼 아득하여라]/ 종차불탄무제승(從此不憚無濟勝)[이제부터 좋은 경치 없어도 개의치 않으니]/ 명산거작일전제(名山遽作一筌蹄)[명산이란 말 갑자기 쓸모없게 되었구나]
「유인시무등산가구화」는 층층 봉우리로 이루어진 무등산을 힘들게 올라 정상에 오른 후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감탄하며 그 정취를 시로 옮긴 것이다. 무등산의 경치는 강항이 경험해 본 것 중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이에 좋은 경치를 보겠다는 목적을 달성하여 더 이상의 명산은 의미가 없어졌다[筌蹄]고 시를 마무리한다.
강항의 「유인시무등산가구화」는 조선 후기 무등산의 절경을 고사로써 극찬하고 있다. 또한,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육체적 힘듦과 산을 오른 후의 황홀한 감정을 대비하여 작품 말미의 평가를 뒷받침한다는 면에서 시의 짜임새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