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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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菊齋遺集 |
영어공식명칭 | Gukjaegyujip |
이칭/별칭 | 국재선생유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민 |
[정의]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중기의 문신 오겸의 문집.
[저자]
오겸(吳謙)[1496~1582]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지족암(知足菴), 또는 금양(錦陽)이며,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1496년에 부사(府使) 세훈(世勳)의 아들로 출생하여 서봉(西峯) 휴우(柳籍)에게 사사(師事)하였다. 1522년에 진사가 되고 1528년에 동부주부(東部主薄)에 올랐다. 1532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1538년에 의령현감(宜寧縣監)에 제수되고 1540년에 예조좌랑(禮曹佐郞)을 거쳐 형조정랑(刑曹正郞)으로 승진하였다. 이어 헌납(獻納), 장령(掌令), 집의(執義) 등을 거쳐 1543년에 남원부사(南原府使)에 제수, 1547년에 전주부사(全州府使), 1550년에는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다. 1552년에 광주목사(光州牧使)에 제수, 경주부윤(慶州府尹), 한성부 좌군(漢城府左尹)을 거쳐 1557년에 호조참판(戶曹參判), 1559년에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승진하였다. 이조판서·병조판서·호조판서, 대사헌(大司憲), 지경연사(知經延事)를 지낸 후 1564년에 좌찬성(左貸成),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거쳐 1571년에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가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에 우의정(右議政)에 올랐으나 노병(老病)으로 낙향하였다. 1582년에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盆號)가 정간(貞簡)이라 내려졌으며, 광주(光州) 광산사(廣山祠)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국재유집(菊齋遺集)』은 오겸의 후손인 오만선(吳萬善)이 1957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국재유집』은 5권 1책의 석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국재유집』은 민광식(閔廣植)이 서문을 썼고, 권1에는 시, 오언단율(五言短律), 칠언단율(七言短律), 오언사율(五言四律), 칠언사율(七言四律) 등이 실려 있는데, 주로 광주 근교의 정자를 읊은 것이다. 권2는 유서(遺書)로 상편과 중편은 나주오씨의 시조와 선조들의 내용을 정리하였고, 하편은 후손에게 당부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3은 부록으로 유사(遺事)와 묘지명(墓誌銘), 시장(諡狀), 「광산사정향축문」, 관보(官譜)가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국재유집』은 전라도와 광주에서 활동한 오겸의 학문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