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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유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719
한자 懷齋遺集
영어공식명칭 Hoejaeyujip
이칭/별칭 회재선생유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백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99년연표보기 - 『회재유집』 목판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983년 - 『회재유집』 영인본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소장처 음성박씨 문중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지도보기
성격 시문집
저자 박광옥
편자 박성일
간행자 박성일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1.5×15.8㎝[반곽]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
판심제 회재유집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정의]

전라도 광주 출신인 조선 중기 문신 박광옥의 시문집.

[저자]

박광옥(朴光玉)[1526~1593]의 본관은 음성(陰城)이며, 자는 경원(景暖), 호는 회재(懷齋)이다. 대대로 광주에 세거하였는데, 10살에 정황(丁橫)과 조광조(趙光祖)에게 수학하였고, 1546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1578년에 전라도·충청도의 도사, 1579년에 예조정랑, 1580년에 지평이 되었고, 성균관직강을 거쳐 영광군수·밀양부사가 되었다. 영광과 밀양에 모두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후 광주·전주의 교수와 사예·사섬시정·봉상시정 등을 역임하고 1589년에 정여립옥사(鄭汝立獄事)가 일어나자, 1581년에 박광옥이 정여립의 청현직(淸顯職) 진출을 막은 이경중(李敬中)을 탄핵하였던 일이 문제가 되어 삭탈관직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신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고향의 의병도청(義兵都廳)에서 군대의 장비와 양식을 조달하였다. 당시 전라감사 이광(李洸)의 무능을 탄핵하였으며, 새로 감사에 부임한 권율(權慄)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의병 활동의 공로로 다시 관직에 올라 나주목사로 재임하다가 죽었다. 1602년에 나주 벽진촌(碧津村)에 세워진 의열사(義烈祠)에 제향되었다. 의열사는 뒤에 벽진서원으로 바뀌었다. 운봉(雲峰)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도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회재유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광옥의 문집으로, 1799년에 종8대손 박성일(朴性一)이 목판본으로 간행하였고, 1847년에 종7대손 박승언(朴承偃)이 부록을 추가하였다. 중간본은 1983년에 후손 박중근(朴重根)이 광산의 회재영당(懷齋影堂)에서 발간하였다.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서지]

『회재유집』은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총 69매로 구성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에 반곽(半郭)[21.5×15.8㎝], 계선이 있다. 행자수는 10행 20자, 어미는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음성박씨 문중[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회재유집』의 전체적인 구성은 목록 16면, 1권 59면, 2권 10면, 부록 상 20면, 부록 하 22면, 별부 10면 등 총 137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은 시 299편, 2권은 잡저 2편, 서(序) 2편, 기(記) 1편, 상소 1편 등 총 6편으로 되어 있다. 부록은 상·하로 구분하여 상권은 연보, 하권은 행장과 선생 사후 사우건립 및 시호를 청하는 상소문 등이며, 별부(別附)는 수적(手蹟)[친필]을 수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의 문신 박광옥의 여러 시문을 통해 박광옥의 교유 관계 및 임진왜란 전후를 연결하는 시대사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전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광주권문집해제』(광주직할시, 1992)
  • 국립중앙도서관(https://www.nl.go.kr)
  • 전남대학교도서관(http://lib.j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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