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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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山溪流濯熱圖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인 |
간행 시기/일시 | 1876년 - 「성산계류탁열도」[김성원]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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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 |
성격 | 그림 |
저자 | 김성원 |
편자 | 김홍헌 |
간행자 | 김홍헌 |
규격 | 22.2×17㎝[반곽] |
어미 | 상이엽하삼엽내향화문어미(上二葉下三葉內向花紋魚尾) |
판심제 |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 |
[정의]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태어난 문인 김성원의 문집 『서하당유고』에 수록된 그림.
[개설]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流濯熱圖)」는 1590년(선조 23) 6월 복일(伏日)[초복, 중복, 말복이 되는 날]에 전라도 광주 근교인 전라남도 창평(昌平)의 식영정(息影亭)에서 김성원(金成遠)과 교유하던 호남 문인들이 가진 탁열(濯熱)[열을 식힌다는 의미] 행사를 그린 그림이다. 김성원의 시문집인 『서하당유고』의 책머리에 실려 있다.
[저자]
김성원(金成遠)[1525~1597]의 자는 강숙(岡叔), 호는 서하(棲霞) 또는 인재(忍齋),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525년(중종 20)에 전라도 광주의 석저성촌(石底城村)[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부친 김홍익(金弘翼)과 모친 해주최씨(海州崔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1525년(중종 20)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담양 창평의 성산(星山) 마을에서 서하당과 식영정을 경영하며 학문과 시문으로 소일하였다. 어렸을 적에는 종숙부인 김윤제(金允悌)에게 배움의 기초를 닦았고, 20대 이후에는 장인인 유사(柳泗)와 김인후(金麟厚)에게 학문을 배웠다. 김성원은 호남의 여러 문인과 폭넓게 교유하였는데, 특히 김성원을 포함해서 이른바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리는 임억령(林億齡)·정철(鄭澈)·고경명(高敬命) 등과 시적 교유가 깊었다. 1592년(선조 25)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의 가관(假官)으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량과 의병을 모아 적극적으로 조력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발생하여 노모를 모시고 부인과 함께 피란하던 중 동복현 모후산(母后山) 아래 성모촌(聖母村)에서 왜적을 만나 노모를 보호하다 세 사람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이때 김성원의 나이는 73세였다.
[편찬/간행 경위]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流濯熱圖)」가 수록된 『서하당유고』는 1876년(고종 13)에 김성원의 9세손 김홍헌(金洪獻)이 집안에 보관된 문서와 다른 문인들의 문집에 수록된 김성원의 시문을 수습하여 상하 2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성산계류탁열도」가 수록된 『서하당유고』의 저본은 전남대학교도서관 소장본으로, 목활자본(木活字本)이다.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에, 반곽(半郭) 22.2×17㎝, 계선이 있다. 반엽(半葉)의 행자수는 10행 20자, 어미는 상이엽하삼엽내향화문어미(上二葉下三葉內向花紋魚尾)이다. 표제는 '서하당집(棲霞堂集)', 판심제(版心題)는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이다. 「성산계류탁열도」는 이도중(李度中)의 권두 서문 다음에 수록되어 있으며, 바로 이어 「탁열도제현명록(濯熱圖諸賢名錄)」이 실려 있다.
[구성/내용]
「성산계류탁열도」는 서하당·식영정·환벽당(環碧堂) 등 세 누정과 누정 주변에 가지를 늘어뜨린 노송, 물가의 버드나무로 그림의 배경을 구성하고 있다. 시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식영정과 환벽당에 선비들이 모여 앉아 탁열 행사를 가지고 있고, 누정 가까이에 그들을 시중드는 노복들이 앉아 있는 한가로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다음에 이어지는 「탁열도제현명록」은 1590년 6월에 복날의 탁열 행사에 모인 인물들을 호(號)·성명·자(字)·거주지 또는 관직·본관에 따라 열거하고 있다. 참석한 문인은 총 11명으로, 김복억(金福億)·김부륜(金富倫)·최경회(崔慶會)·오운(吳澐)·양자정(梁子渟)·김성원(金成遠)·정암수(丁巖壽)·정대휴(鄭大休)·김사로(金師魯)·김영휘(金永暉)·임회(林檜) 등이다. 「탁열도제현명록」 뒤에는 그해 초겨울에 분축(分軸)[조선시대에 공신(功臣)들에게 비단 두루마리에 쓴 공신교서(功臣敎書)를 나누어 주는 것]을 하면서, 여름의 탁열 행사를 추억하며 김부륜과 오운이 각각 지은 시 두 수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성산계류탁열도」는 16세기 호남 문인들이 즐기던 여름 풍속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당시 서하당·식영정·환벽당 주변의 공간 및 지리에 대한 중요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그림과 함께 수록된 「탁열도제현명록」을 통해 누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인들의 교유 관계를 고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