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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해유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695
한자 後海遺稿
영어공식명칭 Huhaeyugo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박세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67년연표보기 - 『후해유고』 간행
소장처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연희동 25]
성격 시문집
저자 송정묵
권책 5권 2책
행자 11행 26자
규격 20.3×15.7㎝[반곽(半郭)]
어미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후해유고
판심제 후해유고

[정의]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송정묵의 시문집.

[개설]

『후해유고』는 일제강점기에 전라도 광주 지역에 거주하며 재야 지식인으로 활동한 송정묵의 시와 문장류를 모아 엮은 문집이다.

[저자]

송정묵(宋廷默)[1855~1927]의 초명은 황묵(晃黙), 자는 명오(鳴吾), 호는 후해(後海),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부친 송내규(宋來奎)와 모친 진양정씨(晉陽鄭氏) 사이에서 1855년(철종 6)에 태어났다. 기정진(奇正鎭)에게 수학하며 학문을 깊이 연마하였고, 이웃이었던 기우만(奇宇萬)과 교유하며 학문적·인간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송정묵은 스스로 호를 '낙호(樂湖)'라 지어 불렀으나, 1910년 조선의 국권이 피탈되자 스스로를 유민(遺民)이라 칭하며 울분을 토로하였다. 이후 공자(孔子)의 '부해지탄(浮海之歎)' 의미를 되새기고, 9대조인 송제민(宋齊民)의 후손이라는 뜻을 담아 호를 '후해'로 바꾸었다. 또한 무오년인 1918년에 대상(大喪)을 당한 후에 국가의 원수를 갚지 못했다 하여 끝내 상복을 벗지 않고 슬퍼할 정도로 성품이 강직하였다. 광주 본촌면 치촌리(峙村里)[현 광주광역시 북구 건국동]에서 올곧은 재야 지식인으로서 평생을 살았으며, 1927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편찬/간행 경위]

『후해유고』는 1967년 송정묵의 후손들에 의해 석인본(石印本)으로 간행되었다.

[형태/서지]

『후해유고』 저본은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소장본으로, 5권 2책이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半郭) 20.3×15.7㎝이며 계선이 있다. 반곽의 행자수는 11행 26자이고, 어미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표제·권수제(卷首題)·판심제(版心題) 모두 '후해유고'이다.

[구성/내용]

『후해유고』 전체 5권 2책 중 권1~2는 시(詩), 권3은 서(書), 권4는 잡저(雜著), 서(序), 기(記), 발(跋), 제문, 행장, 전(傳)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5는 부록이다. 김영한(金寗漢)이 문집 서문을 작성하였고, 발문은 고한주(高漢柱)와 손자 송옥(宋鈺)이 썼다. 권말에는 「호상계안서(湖上契案序)」, 「호상계안(湖上契案)」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후해유고』는 조선의 쇠락을 경험하고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송정묵의 학문, 사상, 문학 세계를 연구하는 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당시 호남 지역 지식인들의 교유 관계를 탐색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전남대학교도서관(http://lib.jnu.ac.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https://lib.aks.ac.kr)
  • 호남기록문화유산(http://www.memoryho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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