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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586
한자 先驅者
영어공식명칭 A pioneer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유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작|발표 시기/일시 1933년연표보기 - 「선구자」 창작 발표
성격 가곡
작곡가 조두남
작사자 윤해영

[정의]

일제강점기에 영웅적 가사와 웅장하고 씩씩한 곡조로 만들어진 가곡.

[개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전남대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학생운동을 펼쳐 나가면서 학교 내에서 「선구자」를 많이 불렀다. 당시 학생운동권에는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지 않아 기존 노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기존 노래의 가사를 바꾸어 부르기도 하였는데, 「선구자」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불렀다. 본래는 항일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를 선구자로 지칭한 의미였다. 그러나 1970년대의 선구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들과 자신, 사회운동가들을 의미하여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에게도 선구자가 되어 줄 것을 호소하는 노래가 되었고, 전남대학교 내에서 가사를 바꾸어 부르기도 하였다. 1980년 봄, 학원자주화투쟁 기간 동안에도 「선구자」는 「훌라송」, 「흔들리지 않게」, 「투사의 노래」 등과 함께 많이 불리던 저항가요가 되었다.

[공연 상황]

「선구자」는 대학교 내에서 집회를 하거나 시위할 때, 잔디밭에 앉아 친구들과 놀거나 학습에 임할 때, 시위나 집회의 뒷풀이 자리에서 울분을 토하며 함께 제창되었다.

[내용]

「선구자」는 본래의 가사대로도 불렀지만, 1970년대 전남대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개사된 버전으로도 많이 불렀다고 한다.

1. 무등산 아침 해가 용봉골에 비칠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고이 간직하였네

자유를 찾겠노라 칼을 갈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을 키우나

2. 무등산 아침 해가 금남로에 비칠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고이 간직하였네

민주를 찾겠노라 칼을 갈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을 키우나

[의의와 평가]

항일운동 기간에 만든 「선구자」는 1970년대에도 불렸고 1980년 5월 대학의 캠퍼스에서도 불렸다. 민주화를 위하여 학생운동에 뛰어든 학생들이 마땅히 부를 노래가 없어 의미를 재부여하고 불렀던 노래였던 것이다. 창작 당시의 「선구자」가 항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선구자는 국가를 위하여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학생운동권에서는 「선구자」를 부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새롭게 결단하면서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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