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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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良翰 |
영어공식명칭 | Jeong Yanghan |
이칭/별칭 | 대거(大擧),지족당(知足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창우 |
[정의]
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홍문관직제학, 도사 등을 지낸 문신.
[가계]
정양한(鄭良翰)[1737~?]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대거(大擧), 호는 지족당(知足堂)이다. 죽사(竹沙) 정구(鄭球)의 6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기현(鄭起賢), 할아버지는 정익수(鄭益壽), 아버지는 정시경(鄭時慶), 어머니는 송덕겸(宋德謙)의 딸이다.
[활동 사항]
정양한은 1737년(영조 13) 광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41세가 되던 1777년(정조 1) 식년시 병과에서 8위[전체 18위]를 차지하여 문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시험은 창경궁(昌慶宮) 춘당대(春塘臺)에서 거행되었으며, 문제는 ‘논(論) 인인능악인(仁人能惡人)’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정양한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정양한의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광주읍지(光州邑誌)』에는 “경주정씨로,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도사를 역임하였다.”라고 짤막하게 적혀 있을 뿐이다. 『호남인물지(湖南人物志)』에는 정조와 관련된 일화가 나오는데,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으로서 입시하니 왕은 석상진(席上珍)이라 일컫고 녹권(錄券) 두 편을 하사하였다.”라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