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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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岡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433번길 59-6[서봉동 32-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효주 |
건립 시기/일시 | 1880년 - 봉강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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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2년 - 봉강재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2년 - 봉강재 중건 |
현 소재지 | 봉강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433번길 59-6[서봉동 32-1] |
성격 | 재실 |
양식 | 한식기와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어등산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재실.
[개설]
봉강재는 한사기(韓謝奇)[1257~1314]를 주벽으로 제향하는 청주한씨의 재실로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한사기는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간의대부(諫議大夫),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냈다. 충렬왕 때 뚤루게[禿魯花]로 가족과 함께 원나라로 갔는데, 아들이 하남부총관(河南府摠官)에 오르자 한림직학사 고양현후(高陽縣侯)에 증직되었다. 사후 어등산에 예장되었다.
[위치]
봉강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433번길 59-6[서봉동 32-1]에 있다.
[변천]
봉강재는 1880년에 건립되었으나 1952년에 중건하였으며, 1992년에 다시 한번 중건하였다.
[형태]
봉강재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한식기와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정면에는 외벌대 화강석 기단 위에 다듬어진 주초를 놓고 평주를 세웠으며, 귀기둥도 원주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 위에는 전형적 한식건물의 가구 형태인 창방소로 장혀를 가구하여 굴도리를 올렸다. 건물의 배치는 중앙의 대청, 좌우는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천정은 우물천정이며 5량가이다. 창호는 어칸이 4분합문으로, 툇간은 분합문으로 되어 있으며 띠살창이다.
[현황]
봉강재 재실 앞에는 「광주서봉동제학공묘각 창건 공적기념비」와 「고려조청대부 보문각제학고양현후한공 신도비명」이 있다. 재실 뒷편으로는 한사기 묘가 있다. 제향은 음력 3월 3일이다. 전반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 지어져 중건을 거치며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