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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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明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한백 |
건립 시기/일시 | 1963년 - 대명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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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대명사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 |
성격 | 사우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관리자 | 나주오씨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오호석과 송시열을 모신 사우.
[개설]
대명사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오호석(吳孝錫)[1620~1696]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모신 사우이다. 오호석은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청에 항복을 하자 1637년[인조 15] 관직을 버리고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가마마을 뒤편 산으로 와서 영사재(永思齋)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1963년 나주오씨 문중은 대명사를 건립하고, 오호석과 송시열을 모셨다. 오호석과 송시열의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한 '숭명배청(崇明排淸)'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사우의 이름를 '大明(대명)'으로 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 가마마을 뒤편 산의 영사재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1963년에 건립되었다.
[형태]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황]
나주오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명사는 광주 지역 유학자의 사상과 여러 가지 활약상, 후손들이 어떻게 선조를 모시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