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12
한자 朴玉心
영어공식명칭 Part Oksim
이칭/별칭 박춘성(朴春成)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1년 4월 12일연표보기 - 박옥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71년 - 박옥심 창악 강사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76년 9월 - 박옥심 판소리 강산제[심청가]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 지정
활동 시기/일시 1980년대 - 박옥심 판소리 강사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95년 9월 21일연표보기 - 박옥심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박실
활동지 광주국악원 - 광주광역시 북구 북문대로 60[운암동 328-16]지도보기
활동지 전남대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300]지도보기
활동지 광주예술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서하로 72[매곡동 385]지도보기
성격 판소리 명창
성별
대표 경력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호 〈판소리 강산제〉 보유자|전남대학교 강사|광주예술고등학교 강사

[정의]

근·현대 시기에 판소리강산제(심청가)를 전승하여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던 판소리 명창.

[개설]

박옥심(朴玉心)[1921~1995]의 예명은 박춘성(朴春城)으로,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박실에서 태어나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으로 출가하였다.

[활동 사항]

박옥심은 12세 때 전라남도 화순 출신 이진영에게 단가를 배웠고, 13세 때부터 33세까지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에 거주하던 정응민에게 판소리를 학습하였다. 이진영에 대한 내용은 알려진 바가 크게 없으나, 성우향과 강도근 등이 학습한 것으로 확인된다. 정응민(鄭應珉)[1896~1964])은 보성군 회천면에 자리 잡고 오랜 기간 지역에서 제자들을 키워낸 판소리 명창이다. 정응민의 제자로는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등 오늘날 알려진 명창들이 많다.

박옥심은 20여 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정응민의 밑에서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등을 학습하였다. 기간이 오랜 만큼 정응민의 소리제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정응민이 「적벽가」 ‘삼고초려 대목’을 지실마을 국악초당의 박동실(朴東實)[1897~1968]에게 학습하게 하였으나, 자신과 뜻이 맞지 않아서 3개월쯤 배우다가 중지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박옥심은 21세 무렵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하여 지방 순회 공연에 참가하였고 2년 후 결혼하여 소리를 중도에 멈추었으나 1960년경 다시 복귀하였다. 1971년경 광주국악원 창악 강사 활동을 시작으로 1980년대 전남대학교, 광주예술고등학교 등에서 판소리 강사로 활동하면서 광주광역시에서 지속적으로 제자들을 육성하였다. 정응민의 소리를 광주광역시에 전승한 공로로 1976년 9월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강산제(심청가) 보유자가 되었다. 박옥심은 오랜 기간 정응민에게 학습한 소리를 광주 지역에 전승하였다. 이로 인하여 광주 지역에 박동실제와 다른 서편제 계열의 정응민제가 전승될 수 있었으며, 광주 지역 판소리의 저변이 확장되었다. 그러나 판소리강산제(심청가)는 1995년 박옥심 명창의 타계와 더불어 지정 해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