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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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歸樂窩集 |
영어공식명칭 | Gwiragwajip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민 |
간행 시기/일시 | 193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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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유광천 |
간행자 | 유병구|유병희 |
권책 | 16권 8책 |
행자 | 10행 22자 |
규격 | 32.4×20.8㎝[전체 크기]|21.3×15.5㎝[반곽] |
어미 | 상하향일엽화문어미(上下向一葉花紋魚尾) |
조선 후기의 문신 유광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유광천(柳匡天)[1732~1799]의 본관은 서산(瑞山)이고, 자는 군필(君弼), 호는 귀락와(歸樂窩)이다. 이조 판서를 지낸 유백유(柳伯儒)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나옹(懶翁) 유익서(柳益瑞),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유지채(柳之采)이다. 아버지는 양기공(兩棄公) 유휘소(柳輝韶)이고,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 생원 이숙빈(李淑馪)의 딸이다. 처는 문정공(文正公) 김인후(金麟厚)의 6대손 김기조(金基祖)의 딸 울산김씨이다. 1732년에 출생한 유광천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익혀 9세에 이미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마치고 장편시를 지었으며, 장성해서는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24세 때인 1755년에 광주에서 순창군 복흥면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28세 때인 1759년[영조 35년]에 기묘 별시 병과 6위로 급제하였다. 장령(掌令)을 거쳐 경성 판관(鏡城判官)에 제수(除授)되었고, 헌납(獻納)·사간(司諫)에 이어 1796년에 승지를 지내다가 179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귀락와집(歸樂窩集)』은 가장(家藏)되어 오던 유고를 1935년에 유광천의 5대손 유영희(柳永禧)가 연보를 작성하고, 정기(鄭琦)의 행장(行狀)을 얻어 6대손 유병구(柳秉九)와 유병희(柳秉熙)가 편집·간행하였다.
『귀락와집』은 16권 8책의 석판본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전남대학교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귀락와집』은 권1~권4에 시 645수, 권5~9에 소(疏) 23편, 계사(啓辭) 6편, 차자(箚子) 2편, 상언(上言) 1편, 책(策) 1편, 일기 1편, 어제경의문대(御製經義問對) 9편, 권10~권12에는 서(書) 84편, 잡저 10편, 서(序) 7편, 기 13편, 발 14편, 표·전(表箋) 2편, 상량문 1편, 축문 3편, 제문 11편, 행장 4편, 묘표 1편, 권13~16에 부록으로 차귀락와원운(次歸樂窩原韻) 101수, 서(書) 107편, 만사 108편, 제문 6편, 연보 1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귀락와집』은 조선 후기의 사회·사상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