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네미재 지명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527
한자 -地名由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 「무네미재 지명유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에 거주하는 차용대와 차판신의 이야기를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1년 - 「무네미재 지명유래」 『광산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7년 - 「무네미재 지명유래」 『명소지명유래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무네미재 지명유래」 『광주의 전설』에 「무네미재 명칭의 유래(2)」로 수록
관련 지명 어등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동 산32-1 지도보기
관련 지명 절골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 지도보기
채록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전설|인물전설
주요 등장 인물 차준백|주지|수원백씨
모티프 유형 남성과 여성이 경쟁해서 물길과 장삼 만들기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네미재의 지명유래에 관한 이야기.

[개설]

광주광역시 광산구어등산 능선에 있는 무네미재는 조선시대 차준백(車俊伯)[1783~1856]의 부인 수원백씨(水原白氏)와 승려가 내기 시합을 해서 수로를 만들어 붙여진 지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광주직할시 광산군에서 간행한 『광산군지』에 수록되었다.

1987년 전라남도에서 간행한 『명소지명유래지』에 수록되었다.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되었다.

[내용]

어등산 중턱 절골[寺洞]이란 마을에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차준백이 살고 있었다. 차준백은 주변 큰 절의 주지(住持)와 친분이 두터워 자주 왕래하였다. 그런데 차준백의 논이 무네미재 너머에 있는데 물이 부족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반면 절골 앞에 있는 천은 물이 항시 흘러넘쳤다.

주지가 어느 날 차준백의 집을 찾았다. 차준백의 부인 수원백씨는 주지에게 절골 앞에 있는 물을 자신의 논에 댈 수 없냐고 물었다. 주지는 물을 댈 수 있는데, 조건 하나가 있다고 하였다. 주지는 물길을 만드는 동안에 백씨부인이 장삼 한 벌을 짓는 시합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백씨부인은 베를 짜서 장삼을 만드는 데 한두 달이면 족하겠지만, 수로는 그 이상의 시일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주지의 시합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지는 수로를 파기 시작하였고, 백씨부인은 베로 장삼을 짜기 시작하였다. 두 달이 지나서야 주지와 백씨부인의 작업이 동시에 끝났다. 주지는 마지막 작업을 끝내고 물을 보내면서 “물 넘어 간다. 물 받아라”라고 외쳤고, 백씨부인은 “장삼 받아라”고 응수하였다. 지금도 이 수로는 700여 미터나 되는 절골 뒤 능선을 돌아 무네미재로 넘어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고개를 물이 넘어간다 하여 무네미재라 하였다.

[모티프 분석]

「무네미재 지명유래」는 오누이 힘겨루기 전설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남성은 지세(地勢)를 새롭게 만들거나 변형시키는 일을 하고, 여성은 옷을 짓는 일을 한다. 여성은 시합의 패자가 되어, 응분의 처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이 지역 사람들의 애정이 깊은 인물 이야기와 연관이 있으면, 승패와 상관없이 교훈적 주제를 남기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무네미재 지명유래」는 주지와 백씨부인의 시합이 상호 간 좋은 결과를 맺으며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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