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249
한자 觀水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동송동길 9-71[송산동 83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90년연표보기 - 관수정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840년 - 관수정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726년 - 관수정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1년 - 관수정 재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7년 - 관수정 개축
현 소재지 관수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동송동길 9-71[송산동 836]지도보기
원소재지 관수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동송동길 9-71[송산동 836]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나주오씨 문중
관리자 나주오씨 문중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개설]

관수정(觀水亭)은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 정자로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삶의 표본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조선 후기에 광산재(廣山齋) 오응석(吳應錫)[1660~1735]이 나주오씨 오겸(吳謙)[1496~1582]을 기리는 의미로 송산동 내동마을에 세웠다.

관수정은 오응석이 만년에 자연을 가까이하고 지역의 유림과 교유하면서 후진을 교육한 강학의 장소였다. 관수정 앞마당에 최초로 썼던 초석이 두 개 보존되어 있다. 현판은 김석남의 글이며 양일묵(梁鎰黙), 오방선(吳邦善), 오재호(吳在瑚)의 관수정중건상량문(觀水亭重建上梁文), 후손인 오왕근의 중수기(重修記), 김문옥(金文鈺)의 「관수정기(觀水亭記)」를 통해 관수정 중수 과정을 알 수 있다. 관수정에는 12개의 현판이 걸려 있고, 전면의 원형 기둥에 주련이 4장 걸려 주변의 수려한 풍광의 운치를 표현하고 있다. 정자 아래에는 당산나무[느티나무]가 있어 오겸이 마을에 터를 잡았음을 기념하고 있다.

[위치]

관수정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유원지 인근 내동마을 당산나무 뒤에 있다. 관수정 가까이에 평림천황룡강이 만나 흐른다.

[변천]

관수정은 1690년 건립되고 1726년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840년 훼철된 후 1941년 재중건되었다가 1987년 공간을 확장하여 개축되었다.

[형태]

관수정은 외벌대 기단 위 고복형 주춧돌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중앙에 방을 들였다. 방문은 3면에 4분합문을 달았으며 문에는 청판(廳板)과 띠살창으로 장식하였다. 건물 좌우와 전면에는 쪽마루를 놓았고 측면과 후면의 마루 끝에 난간을 두었다. 홑처마에 물받이용 양철판 처마가 길어서 쇠기둥을 활주처럼 받쳐놓았다.

[현황]

관수정은 처마 밑에 과도하게 넓은 물받이를 달아 정갈한 맛을 잃고 정자 내부가 어둡다. 정자의 계단 아래로 당산나무, 모정과 함께 지속적인 관심으로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관수정은 옛사람의 학문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정자 아래의 당산나무에서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어 전통 계승의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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