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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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證心竹樓次舊韻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59년 - 고경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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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09년 - 고경리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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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지역 | 증심사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 |
성격 | 한시 |
작가 | 고경리 |
조선시대 학자인 고경리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 내의 증심사를 방문하고 지은 한시.
「증심죽루차구운(證心竹樓次舊韻)」을 지은 고경리(高敬履)[1559~1609]의 자는 이척(而惕), 호는 창랑(滄浪),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아버지는 고계영(高季英), 어머니는 양응기(梁應箕)의 딸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에게 수학하였다. 1591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과 우계(牛溪) 성혼(成渾)[1535~1598]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이유로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1676년 전라도 광주에 건립된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창랑실적(滄浪實蹟)』이 있다.
「증심죽루차구운」은 1구에 7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이다.
증심죽루차구운(證心竹樓次舊韻)[증심사 죽루에서 옛 운에 차운하다]
노선심여죽구허(老禪心與竹俱虛)[늙은 선사의 마음은 대나무처럼 비었는데]/ 상엽진동객빈소(霜葉眞同客鬢疎)[길손의 성근 머리는 서리 맞은 단풍잎 같구나]/ 백족타년당상방(白足他年倘相訪)[혹시 스님과 다음에 서로 만나게 되면]/ 무릉추우병상여(茂陵秋雨病相如)[무릉의 가을비에 병든 상여 같겠지]
「증심죽루차구운」은 고경리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 내 사찰 증심사를 방문하고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이다. 작품 말미의 “무릉(茂陵)”은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B.C.179~B.C.117]가 병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지내던 곳으로, 화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쓸쓸한 정취를 그리고 있다.
증심사의 승려 조선(祖禪)이 시를 적는 두루마리인 시축(詩軸)을 만들었는데, 많은 문인이 그곳에 시를 지어 적었다. 고경리의 「증심죽루차구운」 역시 “조선의 시축에 짓다(題祖禪軸)”라는 주가 붙어 있어 그 흔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