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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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湖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31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효주 |
건립 시기/일시 | 1916년 - 용호재 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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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6년 - 용호재 1차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2년 - 용호재 2차 중수 |
현 소재지 | 용호재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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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재실 |
양식 | 팔작지붕 주심포 양식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금성범씨 문중 |
관리자 | 금성범씨 문중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에 있는 조선 후기 금성범씨 재실.
용호재는 생용동에 있는 복애(伏厓) 범세동(范世東)을 주벽으로 하는 금성범씨 재실이다. 범세동은 고려 말엽 정충탁절(貞忠卓節)[충성심이 깊고 절조가 굳음]로 이름이 높은 인물이다. 조선 순조 때 범세동 및 범세동의 6세손 범가용(范可容), 학행이 높은 범천배(范天培)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순국한 범기생(范起生), 범기봉(范起鳳)을 배향하던 복룡사(伏龍祠)가 세워졌다. 이후 복룡사 터에 세운 제각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314에 자리하고 있다.
복룡사가 철폐된 뒤 세워진 재실로 1916년에 후손들이 재건하였다. 1966년 1차 중수에 이어 1982년 2차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팔작지붕으로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졌다. 용호재의 현판은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가 썼다. 기단은 담을 쌓은 콘크리트 기단으로 그 위에 다듬어진 주초를 놓고 평주를 세운 건물이다.
용호재 주변으로 생룡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생룡마을은 금성범씨 집성촌이다. 건물 입구에 대문이 세워져 있으며, 금성범씨 사우 유허비 재각이 재실 뒤에 세워져 있다. 복애 범세동에 대한 사적을 기록한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