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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쿠삭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853
영어공식명칭 Thomas Cusac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라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토마스 쿠삭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34년 12월 21일 - 토마스 쿠삭 가톨릭 사제 서품
수학 시기/일시 1932년 - 토마스 쿠삭 달간 파크 선교회 신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토마스 쿠삭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
활동 시기/일시 1946년 4월~1947년 1월 - 토마스 쿠삭 북동본당에서 사목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토마스 쿠삭 목포본당 13대 주임신부 재직
몰년 시기/일시 1950년 9월 24일[추정] - 토마스 쿠삭 사망
출생지 아일랜드 클레어주
학교|수학지 달간 파크 선교회 신학교 - 아일랜드
활동지 저전동성당 - 전라남도 순천시 서문로 19-1[저전동 96-1]
활동지 천주교북동성당 - 광주광역시 북구 금재로 76[북동 33]지도보기
활동지 산정동성당 - 전라남도 목포시 노송길 32-6[산정동 74-78]
성격 가톨릭 신부
성별
대표 경력 저전동본당 주임신부|북동본당 사목|목포본당 주임신부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에 입국하여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여러 성당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가 6.25전쟁 때 순교한 가톨릭 신부.

[개설]

토마스 쿠삭(Thomas Cusack)[1910~?]은 1910년 아일랜드 클레어주에서 태어나 1932년 달간 파크(Dalgan Park) 선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12월 21일 가톨릭 사제로 서품되었다. 1935년 조선에 입국하여 광주교구 소속의 여러 본당을 맡아 사목 활동을 펼쳤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본국으로 추방되었다가 1949년 다시 선교사로 돌아왔다. 6.25전쟁 때 인민군에 의해 피랍되어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 사항]

1935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라남도 광주교구[지금의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여러 본당을 맡아 사목 활동을 펼쳤다. 전라남도 순천의 저전동본당[지금의 저전동성당] 4대 주임신부를 거쳐, 1946년 4월부터 1947년 1월까지 전라남도 광주의 북동본당[지금의 천주교북동성당]에서 사목하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헌신적으로 신자들을 돌보아 '성인 사제'라고 불리었다. 특히 바쁜 일정에도 성인 교리반, 학생반, 세례 준비반을 지도하였으며, 소년원생과 불우한 환자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본국으로 갔다가 1949년 전라남도 목포의 목포본당[지금의 상정동성당] 13대 주임신부로 재임하였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목포본당 주임신부로 재임 중이던 토마스 쿠삭은 피난 온 안 파트리치오 4대 광주교구장을 보좌하며 목포본당을 지키다가 1950년 7월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9월 24일경 충청남도 대전의 목동본당[지금의 목동성당] 옆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서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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