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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원이가 던져 버린 비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246
한자 金-碑石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염승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8년 4월 27일 - 「김방원이가 던져 버린 비석」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평촌마을에 거주하는 김종수의 이야기를 채록
채록지 평촌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진로 379[본량동 698-20]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설화
주요 등장 인물 김방원
모티프 유형 지명유래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촌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마을 뒤에 있었던 비석에 관한 이야기.

[개설]

「김방원이가 던져 버린 비석」은 김방원이라는 도적이 길에 있는 비석을 사람이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다가, 그 비석을 뽑아 마을 앞에 있는 방죽에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8년 4월 2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촌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김종수[남, 85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주관하는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에 수록되었다.

[내용]

평촌마을 뒤편에 묘가 하나 있는데, 그 묘를 심총(沈塚)이라 불렀다. 그런데 청송심씨(靑松沈氏)광주정씨(光州鄭氏) 집안이 서로 자기 집안의 묘라 주장하면서 제를 모셨다. 결국 조선 말기에 두 집안의 싸움은 소송으로 번졌는데, 두 집안이 같이 제사를 모시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하며, 아직까지도 논쟁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두 집안이 묘지 앞에 비를 세우기 이전에 원래 비석이 하나 있었다. 김방원이라는 힘이 센 도적이 도적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석을 보고 사람이 서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였다. 이에 김방원은 그 비석을 뽑아 마을 앞에 있는 방죽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현재 비석이 던져진 자리는 논이 되었는데, 심씨 집안에서 논을 파서 정말 비석이 있는지 확인하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김방원이가 던져 버린 비석」의 주요 모티프는 '오해로 인한 행동의 결과'이다. 묘비석은 죽은 사람의 사적이나 행적 등을 돌에 새겨 사자를 기념하는 것으로, 죽은 사람의 신분, 성명, 행적, 자손, 출생일, 사망일 따위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김방원이라는 도적이 비석을 사람으로 착각하여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비석을 방죽에 던져 버렸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두 집안이 묘지에 묻힌 사람의 성명과 가문을 확인하지 못하여 누구 집안의 묘인지 확인하지 못한다. 만일 김방원이라는 도적이 비석을 방죽에 던지지 않았다면, 두 집안이 묘지 문제로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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