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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산」[신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875
한자 瑞石山-申楫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80년 - 신즙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9년 - 신즙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34년연표보기 - 신즙 「서석산」 지음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신즙

[정의]

조선 중기 문신인 신즙이 정양필의 시 「서석산」을 차운하여 쓴 한시.

[개설]

「서석산(瑞石山)」을 지은 신즙(申楫)[1580~1639]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섭(汝涉), 호는 하음(河陰)이다. 정경세(鄭經世)와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4년 이언적(李彦迪)을 변무(辨誣)[사리를 따져서 억울함을 밝힘]하는 일로 한양에 머물던 중 유생들을 위한 시험에 합격하였다. 1606년에는 식년시에 합격하여 저작·박사·전적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함창현 율리[현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구례현감을 시작으로 다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형조좌랑·강원도도사·형조정랑·무안현감 등을 지냈다. 1636년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머물던 중 병자호란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켰다. 1637년 한성서윤·형조정랑·사예에 임명되었고, 1639년 8월 밀양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직전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하음문집(河陰文集)』 등이 있다.

「서석산」신즙의 문집 『하음선생문집(河陰先生文集)』 3권에 수록되어 있다. 신즙은 "서석산차정능주몽뢰양필운(瑞石山次鄭綾州夢賚良弼韻)"이라고 하였는데, 몽뢰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양필(鄭良弼)[1593~1661]의 자이다. 제목에 갑술(甲戌)이라는 소주가 붙어 있는데, 「서석산차정능주몽뢰양필운」이 갑술년, 즉 1634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구성]

「서석산(瑞石山)」은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서석산(瑞石山)

천림전학로천회(穿林轉壑路千回)[숲을 뚫고 골짜기 도는 천 굽이 길]/ 서석봉전보보래(瑞石峯前步步來)[서석봉 앞까지 걸어 걸어 왔다네]/ 사경방간시사금(寫景方看詩似錦)[경치를 그려보니 시는 비단 같고]/ 빙허선각기여뢰(憑虛旋覺氣如雷)[허공에 기대니 기상이 우레와 같구나]/ 용산흥미풍취모(龍山興味風吹帽)[용산의 흥취라 모자에 바람 불고]/ 등각봉영주만배(滕閣逢迎酒滿盃)[등각의 뜻을 맞추니 술잔이 가득차네]/ 지위명조진사출(只爲明朝塵事出)[그저 내일이면 속세로 나가야 하니]/ 기로청몽벽운대(幾勞淸夢碧雲臺)[벽운대 맑은 꿈 얼마나 애태울까]

[의의와 평가]

「서석산」신즙의 시 세계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신즙과 정양필과의 교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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