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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태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602
한자 李-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0년 - 「이장태 이야기」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광산마을에 거주하는 이현준의 이야기를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0년 - 「이장태 이야기」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
관련 지명 황룡강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도보기
관련 지명 가정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면 지도보기
채록지 광산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사화(史話)|지혜담
주요 등장 인물 이춘영[이장태]|송부자(宋富者)|동학 농민군
모티프 유형 동학 농민군을 이끈 이춘영이 지혜를 발휘해 일본군과 관군을 공격함.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춘영에 관한 이야기.

[개설]

동학 농민군을 이끈 이춘영(李春榮)[1869~1896]은 군인 수와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장태를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서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서 전라도 장성 황룡강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장태 이야기」는 이러한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0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 거주하는 이현준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2000년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하였다.

[내용]

이춘영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장성군 일대에서 이장태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춘영은 전라도 장성군 삼서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춘영은 20세 무렵 외가가 있는 전라도 남원군 운봉에서 4년 동안 살았으며, 그곳에서 동학사상을 접하였다. 이춘영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향 사람들은 구시대 윤리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이춘영은 고향에서 동학사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여러 사회적 모순과 지배층의 무능·부패가 축적되면서 하층민의 삶은 더욱 곤궁해졌고, 급기야 동학사상을 접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봉기를 하게 되었다.

동학 농민군은 초기 봉기에서 맹렬한 기세로 전라도와 충청도 대부분의 고을을 점령하였다. 동학 농민군이 새 세상을 펼치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일본군과 관군이 신식 무기를 앞세워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춘영은 일본군과 관군이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학 농민군을 소집하였다. 그러나 동학 농민군이 들고 있는 무기는 활과 창, 농기구, 구식 화승총이 대부분이었다. 이춘영은 며칠 동안 고민을 한 뒤에 닭장태[대나무로 엮은 원기둥형의 닭우리]를 만들어서 공격과 방어에 활용하기로 하였다. 이춘영은 임곡면 가정마을 송부자의 집에 굵은 대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송부자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대나무를 마련해 장태를 만들었다. 동학 농민군은 황룡강변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맞섰는데, 5~6명을 한 조로 하여, 8개의 장태를 선봉에 세우고 일제히 굴려나가면서 공격을 감행하였다. 동학 농민군은 대단한 기세를 올릴 수 있었다.

장태는 인공 요새가 되어서 일본군과 관군의 총탄을 막아 낼 수 있었고, 동학 농민군은 장태 뒤에 숨어서 공격하였다. 이춘영의 지략과 용력은 동학농민전쟁 초기에 일본군과 관군을 물리치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수의 군사와 충분한 물자를 갖춘 일본군과 관군에게 애석하게도 패하고 말았다. 이춘영은 장태를 이용한 지략 때문에 이장태라는 별명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모티프 분석]

「이장태 이야기」는 인물전설로서 사화(史話)에 해당한다. 사화란 역사적 사건을 사실에 근거해서 이야기화한 전설의 하위 장르이다. 동학 농민군을 이끈 이춘영의 황룡강 전투가 사람들의 구술로 전해오면서 「이장태 이야기」가 구성되었다. 이춘영이 군사의 수와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장태를 만들어서 전투에 활용한 일화가 하나의 지혜담처럼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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