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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370
한자 光州美文化院
이칭/별칭 광주미국문화원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 29-2[황금동 8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광주미문화원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89년 5월연표보기 - 광주미문화원 잠정 폐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12월 9일 - 광주미문화원 방화 사건
최초 설립지 광주미문화원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 29-2[황금동 80]
현 소재지 광주미문화원 터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 29-2[황금동 80]지도보기
성격 근대건물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었던 미국 문화 진흥 기관.

[개설]

광주미문화원 건물은 본래 1925년에 광주의 유일한 조선인 건축가였던 김순하가 설계한 춘목암(요리집)이었다. 해방 후 미군정 관리 하에 미군 숙소를 거쳐 광주 미국공보원이 사용한 건물이었다.

[설립 목적]

광주미문화원은 미국 정부가 해외 홍보를 위하여 세계 각국에 설치한 기관 중 하나로, 홍보활동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광주미문화원은 1925년에 개소한 춘목암에서 시작되었다. 춘목암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사용한 건축물인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어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이 관리하면서 1949년에 광주 미국공보원이 들어섰다. 이후 광주미문화원으로 탈바꿈하였다.

광주미문화원이 운영되고 있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하였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몇몇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상징인 미국이 광주의 항쟁을 지지할 것이라 기대하였으나 미국은 방관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에 일부 광주 시민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겠다며 1980년 12월 9일 광주미문화원에 방화를 일으켰다. 1982년 또 다시 광주미문화원에서 방화가 일어났으며, 1985년 광주미문화원 점거 사건 등이 이어졌다. 결국 광주미문화원은 1989년 5월 잠정적으로 폐쇄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미문화원은 미국 공보관과 유사한 업무를 맡았는데, 주요 업무는 미국 외교 정책의 대외 홍보나, 문화 소개, 혹은 미국 정부가 발표한 성명의 속보, 각종 문화전시회나 영화상영 등의 문화 교류 사업 등의 추진이었다.

[현황]

2021년 3월 기준, 광주미문화원의 건물은 철거되어 황금동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980년 이후 광주 지역 반미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또한 이후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반미 관련 시위와 미국대사관, 미국문화원에 대한 공격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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