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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성당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289
한자 南洞聖堂市民收拾對策委員會
영어공식명칭 Namdong-catholic Citizen Emergency Headquarters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67[남동 55]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80년 5월 22일연표보기 - 남동성당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설립
최초 설립지 남동성당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67[남동 55]지도보기
성격 대책 위원회
설립자 김성용|이성학|홍남순|조비오|명노근|추길안|김천배 등 16명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남동에 있는 천주교 시민 단체.

[개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광역시 동구 남동성당의 주임 신부였던 김성용, 재야 인사, 일반 시민 등이 구성한 시민수습대책위원회이다. 이전의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미온적인 태도와 함께 계엄 철폐, 전두환 퇴진 등과 같은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협상안을 만들어 신뢰를 받지 못하고 당국과의 협상도 실패하게 되면서 결성된 새로운 시민수습대책위원회이다.

[설립 목적]

남동성당 시민수습대책위원회는 이전의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미온적인 태도와 함께 계엄 당국과의 협상에 실패하여 시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동성당의 김성용 신부를 중심으로 새롭게 결성되었다.

[변천]

민주화운동이 장기화되어 가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전의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서 상황 타개를 위한 새로운 시민수습대책위원회로 변화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당시 남동성당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는 김성용 신부, 이성학 장로, 홍남순 변호사, 조비오 신부, 명노근 교수, 추길안, 김천배 등 16명이었다. 남동성당 시민수습대책위원회는 새롭게 위원회를 결성하게 된 이유를 밝히고 계엄 당국과 정부에 대한 8가지 요구 사항을 만들어 도청에서 활동하던 기존의 시민수습대책위원회를 만났다. 당시 남동성당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계엄군과 정부에 요구한 8가지 사항은, '사태가 수습되기 전까지 군 투입 금지, 연행자 전원 석방, 군의 과잉 진압 인정, 사후 보복 금지, 책임 면제, 사망자에 대한 보상 처리, 위와 같은 부분이 관철될 시에 무장 해제 실시' 등이었다. 1980년 5월 23일, 이원화되어 있던 시민수습대책위원회를 하나로 합칠 필요가 있다는 판단과 함께, 조비오 신부가 통합 작업을 맡아 진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남동성당 시민수습대책위원회는 종교계 인사까지 포함된 범시민적 대책 위원회였고, 기존의 시민수습위원회와는 달리 시민들이 원하는 요구 사항을 8가지로 내세웠다. 남동성당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결성된 후 혼란스러웠던 위원회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었고, 나아가 계엄 당국과 협상을 재시도할 수 있었다. 특히 새로운 대책 위원회 결성의 중심이었던 김성용 신부가 광주에서 서울로 빠져나가 광주의 상황을 알림으로써 전국에서 광주의 상황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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