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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28
한자 劉漢先
영어공식명칭 Yu Hanseon
이칭/별칭 달리는 유한선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연표보기 - 유한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음력 6월 - 유한선 전라남도 지역에서 국민회 조직 결의
활동 시기/일시 1919년 음력 7월 - 유한선 전라남도 광주·나주 등지에서 국민회 회원 모집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과 보조금 납부 권유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0월 - 유한선 기독교 신도 대상 국민회 회원 모집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0년 6월 21일 - 유한선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50년 10월 19일연표보기 - 유한선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1년연표보기 - 유한선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숭일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유한선(劉漢先)[1876~1950]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유한선(劉漢鮮)'이라고도 하였다. 전라남도 지역에 국민회(國民會)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과 보조금을 보내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유한선은 전라남도 광주의 숭일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음력 6월 평양의 국민회 회원인 장공섭(張公燮)으로부터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회를 조직하고 25세의 남자 회원은 1원씩 회비를 납부하자."라는 국민회 취지서 및 규약서를 전달받고, 전라남도 지역에 국민회를 조직하고자 결의하였다. 유한선은 자신의 집에서 이주상(李周庠), 허원삼(許元三), 최종렬(崔鍾烈), 김양숙(金良淑) 등 8명에게 국민회의 취지를 설득하여 입회시키고, 새로운 회원 가입과 입회비의 모금을 권유하였다.

1919년 음력 7월 전라남도 나주군 산포면에서 서금덕(徐今德) 외 3명을 가입시키고, 다시 산포면 김황규(金黃奎)를 만나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그리고 1919년 윤 7월에는 이동섭(李東燮) 외 7명 등을 가입시키고, 각자 1원의 입회비를 납부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돕는 일을 지속하고자 하였다. 1919년 음력 7월 말경에는 나주군 다도면 신동리 예수교회에 모인 사람들과 나주군 남평읍 예수교회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과 보조금 납부를 권유하였다.

1919년 7월경부터 1919년 10월경까지 주변의 기독교 신도들을 설득하여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입회금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원조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105원을 장공섭에게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도록 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12월 22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20년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50년 10월 19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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