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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03
한자 金鍾浩
영어공식명칭 Kim Jongh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노기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9년 12월 15일연표보기 - 김종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8년 6월 - 김종호 광주고등보통학교 동맹 휴교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28년 6월 30일 - 김종호 홍헌종 배신 행위 징계, 응징
활동 시기/일시 1928년 11월 6일 - 김종호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2005년 10월 21일연표보기 - 김종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9년연표보기 - 김종호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 164
거주|이주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 164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종호(金鍾浩)[1909~2005]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 164[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출생하였다.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전교생 동맹 휴교 지도부를 이끌며 결속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이탈자를 감시하며 폭력으로 제지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활동 사항]

1928년 4월경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리 일대에서 이경채(李景采) 등 8명이 조선 독립과 민족 차별 노예 교육 반대 등의 격문을 작성하여 살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1928년 6월 8일 광주고등보통학교 5학년생 이경채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928년 6월 19일 퇴학 처분을 당하게 되었다. 이경채가 복교를 신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학교장의 태도에 분개하였다.

1928년 6월 14일 5학년생 김종호 등이 주동이 되어 대표자를 뽑고, 1928년 6월 24일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여 교장의 태도를 비난하는 글을 읽은 후 회의를 하지 못하게 저지하였다. 김종호 외에 조기석(趙璣錫)을 비롯한 3학년생 허진환(許振煥) 등이 주도적으로 동맹 휴교를 이끌었다. 이 밖에도 2학년생 정재억(鄭載億), 주재성(朱在成), 이강후(李康厚), 이강오(李康午) 등이 나섰다.

1928년 6월 25일 학교당국에 '광주고등보통학교 교장 및 교직원 해직 촉구, 이경채 복교 및 무도장 확장, 조선인 본위의 교육 현실에 관한 사항 등을 게재한 진정서 제출'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6월 26일 일본인 백정(白井) 교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김종호 등 주동 학생들은 진정서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이경채 권고 퇴학의 이유를 밝히라며 전교생이 동맹 휴교에 돌입하였으며, 동맹 결속을 위반하는 자는 제재를 가하기로 의결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 백정 교장은 주모자라고 인정되는 생도 27명을 퇴학 처분하고, 생도 280명을 무기정학을 처분하였다. 그러자 6월 30일 밤 광주고등보통학교 1학년생 홍헌종(洪憲鍾)이 전교(轉校) 희망 용건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살고 있는 광주고등보통학교 일본인 교사 복중중행(福重重行)의 집을 방문하였다. 홍헌종의 이동을 알아차린 김종호 등 주동 학생들은 부동교에서 홍헌종을 붙잡아 몽둥이로 구타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김종호는 1928년 8월 1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 등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며, 1928년 11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김종호는 졸업을 앞두고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201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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