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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84
한자 高循厚
영어공식명칭 Ko Sunhu
이칭/별칭 정헌(靜軒),도상(道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미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9년연표보기 - 고순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고순후 식년시 진사(進士) 입격
활동 시기/일시 1627년 1월 28일 - 고순후 호남 의병장으로 부임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의병장|형조정랑|호남 의병장

[정의]

조선시대 이괄의 난·정묘호란 당시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가계]

고순후(高循厚)[1569~?]의 본관은 장택(長澤), 자는 도상(道常), 호는 정헌(靜軒)이며, 충렬공(忠烈公) 고경명(高敬命)의 넷째 아들이다.

[활동 사항]

고순후는 1569년(선조 2)에 출생하였으며, 몸가짐이 바르고 기질이 강개하였다.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으며, 1591년(선조 24) 23세의 나이로 식년시 진사(進士)에 입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고 현감(縣監), 감찰(監察)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형조정랑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 고경명과 형 고종후(高從厚), 고인후(高因厚)가 순절하였는데, 당시 고순후는 어린 나이로 함께하지 못하여 항상 눈물을 흘리며 한으로 여겼다. 고순후는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 왕이 남쪽으로 피란하자 격문을 내어 의병과 군량을 모아 근왕(勤王)하려 하였으나 난이 평정되자 모은 군량을 전주 감영에 바치고 전라도 광주로 돌아왔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였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고순후를 천거하여 1627년 1월 28일 호남 의병장으로 임명되었고, 고순후는 의병청을 설치하여 의병과 군량을 모아 전주에 도착하였으나 굴욕적인 화의가 이루어진 뒤였다. 당시 동궁의 분조(分朝)가 전주에 있었으므로 세자를 호위하여 여산(礪山)에 도착하였고, 모았던 군량을 감영에 바치고 전라도 광주로 돌아온 이후 은둔하며 살다가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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