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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835
한자 李燁
영어공식명칭 Lee Yeop
이칭/별칭 시회(時晦),농은(農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창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29년연표보기 - 이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63년 - 이엽 생원 입격
활동 시기/일시 1777년 - 이엽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79년 - 이엽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79년 - 이엽 「북한도봉산유기(北漢道峯山遊記)」 작성
활동 시기/일시 1781년 - 이엽 영조실록랑(英祖實錄郞), 선조보감찬집랑(先朝寶鑑纂輯郞), 예문관전적(藝文官典籍) 등 역임
몰년 시기/일시 1788년연표보기 - 이엽 사망
출생지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전의(全義)
대표 관직 영조실록랑|선조보감찬집랑|예문관전적

[정의]

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영조실록랑, 선조보감찬집랑, 예문관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이엽(李燁)[1729~1788]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시회(時晦), 호는 농은(農隱)이다.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의 6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운부(李雲榑), 할아버지는 이윤(李潤), 아버지는 이상규(李相奎), 어머니는 이이상(李以相)의 딸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부인은 이귀만(李龜晩)의 딸 광주이씨(廣州李氏)와 소○○(蘇○○)의 딸 진주소씨(晉州蘇氏)이다.

[활동 사항]

이엽은 1729년(영조 5) 광주의 쌍유리(雙柳里)[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서 태어났으며, 1763년(영조 39) 진사에 입격하였고, 1777년(정조 1) 실시된 증광시(增廣試)에서 병과 7위[전체 17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779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비롯하여 영조실록랑(英祖實錄郞), 선조보감찬집랑(先朝寶鑑纂輯郞) 등 사서를 편찬하는 업무를 담당하였고, 강령현감(康翎縣監)으로 발령되어 외직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788년(정조 12) 강령현감의 업무를 수행하던 중 강령에서 사망하였다.

이엽은 관료로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엽의 작품이나 시론(詩論)을 탐색하는 논고가 적지 않은 것은 이러한 점을 웅변한다. 이엽은 성리학자임에도 태극(太極)이나 『주역』 등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으며, 경세(經世)와 관련한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광주읍지(光州邑誌)』는 “문장과 재행(才行)으로 세상에서 추중(推重)을 받은 자”라 쓰고 있다.

[학문과 저술]

이엽은 기국진(奇國鎭), 유광천(柳匡天), 이기경(李基敬), 홍낙명(洪樂命), 서배수(徐配修) 등과 교유하였다. 『농은집(農隱集)』은 이엽의 글을 모아 1960년에 간행한 문집이다. 전체 7권 3책의 석인본으로, 이엽의 후손인 이도형(李道衡) 등이 중심이 되어 편수하였다. 기정진(奇正鎭)이 서문을, 후손 이기완(李起完), 이도형 등이 발문을 썼다. 그 밖에도 『학고집(學古集)』, 『전거록(田居錄)』, 『낙하록(洛下錄)』과 같은 저술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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