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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38
한자 金文發
영어공식명칭 Kim Moonbal
이칭/별칭 부용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문다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59년연표보기 - 김문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86년 - 김문발 돌산만호와 순천부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94년 - 김문발 왜적선 포획의 공으로 하사품 받음
활동 시기/일시 1406년 - 김문발 전라도수군단무사로 왜적선 포획
활동 시기/일시 1407년 - 김문발 요동의 피망민을 명나라로 압송
활동 시기/일시 1408년 - 김문발 충청·전라도수군도체찰추포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08년 - 김문발 운반선 사고로 순금사에 수감
활동 시기/일시 1411년 - 김문발 충청도수군절제사 사직
활동 시기/일시 1412년 - 김문발 수로를 활용한 조운법 상서
활동 시기/일시 1412년 - 김문발 전라도수군절제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18년 - 김문발 황해도도관찰사 사직
몰년 시기/일시 1418년연표보기 - 김문발 사망
출생지 황산마을 - 광주광역시 남구 지도보기
부임|활동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부임|활동지 부용정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129 지도보기
성격 무관
성별
본관 광산
대표 관직 도평의녹사|전라도수군단무사|상호군|충청·전라도수군도체찰추포사|황해도관찰사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충청·전라도수군도체찰추포사, 전라도수군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가계]

김문발(金文發)[1359~1418]의 본관은 광산이며, 문정공(文正公) 김태현(金台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김거안(金巨安)이다. 아들은 김승평(金昇平)이다.

[활동 사항]

김문발은 광주의 황산(黃山)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고려 말 도평의록사(都評議錄事) 출신이며 1386년(우왕 12) 전라도원수를 따라 남원(南原)·보성(寶城) 등지에서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돌산만호(突山萬戶)와 순천부사(順天府使)가 되었다. 조선 초기 1394년(태조 3)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김빈길(金賓吉), 만호 김윤검(金允劒) 등과 함께 왜적선 세 척을 포획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활·화살·은기(銀器) 등을 하사받았다.

1406년(태종 6) 김문발은 전라도수군단무사(全羅道水軍團撫使)로서 왜적선 한 척을 포획하였다. 1407년(태종 7)에 상호군(上護軍)이 되어 이추(李推), 대호군(大護軍) 강원길(姜元吉)과 함께 요동에서 부역 등을 피해 도망쳐온 피망민을 압송하여 명나라로 돌려보내는 업무를 관장하였다.

1408년(태종 8) 김문발은 경기수군도절제사(京畿水軍都節制使)로서 충청·전라도수군도체찰추포사(忠淸全羅道水軍都體察追捕使)를 겸직하였으나, 도내(道內)의 선척(船隻)이 덕적도(德積島)에 들어가 미납한 숯을 구울 나무를 싣고 오다가 풍랑을 만나 사고가 발생하여 순금사(巡禁司)에 수감되었다. 1411년(태종 11) 김문발은 충청도수군절제사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인하여 벼슬을 사양하였다. 1412년(태종 12) 육로 대신 수로로 조운법(漕運法)을 변경할 것을 상서하였으며, 전라도수군절제사에 임명되었다. 1418년(태종 18) 황해도도관찰사(黃海道都觀察使)에 제수되어 부임하였으나 곧 병으로 사직한 뒤에 60세로 사망하였다.

김문발부용정(芙蓉亭)[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129번지,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을 세우고, 부용정에서 여씨 형제(呂氏兄弟)의 남전향약(藍田鄕約)과 주자(朱子)의 백록동규약(白鹿洞規約)을 본받아 향약을 시행하였는데 광주에서 시작된 첫 향약이자 광주 향약좌목(鄕約座目)의 유래로 평가받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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