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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풍사지 석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50
한자 傳巖淸風寺址石塔
영어공식명칭 Stone Pagoda of Cheongpungsa Temple Site(Presumed)
이칭/별칭 영암 청풍사지 석탑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300]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염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69년 - 전 청풍사지 석탑 이전
성격 석탑
재질 석재
크기(높이) 약 3.9m[높이]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대강당 앞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개설]

전 청풍사지 석탑(傳巖淸風寺址石塔)은 영암 청풍사지 석탑(靈巖淸風寺址石塔)이라고도 한다. 이중 기단(基壇) 위에 4층의 탑신이 있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지금은 5층 탑신이 없으나 1943년에 편찬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와 1956년에 편찬된 『전남명승고적도집성(全南名勝古跡圖集成)』에 5층탑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오층석탑으로 추정된다. 전 청풍사지 석탑은 원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학송리에 있었지만, 도로 확장으로 인해 1969년 전남대학교 대강당 앞 잔디밭으로 옮겨졌다.

[위치]

전남대학교 대강당 앞 잔디밭에 담양 서봉사지 석탑(潭陽瑞峰寺址石塔)과 함께 있다.

[형태]

전 청풍사지 석탑은 높이 약 3.9m로, 전반적으로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얕게 돋을새김되었다. 1969년 전남대학교로 이전하면서 상대중석(上臺中石) 1매를 새로 만들었다.

기단부는 이중 기단으로 지대석(地臺石)은 마치 탑구(塔區)처럼 넓다. 지대석은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하대중석(下臺中石)과 하대갑석(下臺甲石)은 한 돌로 이루어졌다. 하대중석 각 면에는 2개의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얕게 돋을새김되었으나, 현재 탱주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상층 기단 받침은 없다.

상대중석은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중석의 각 면에는 2개의 우주와 1개의 탱주가 돋을새김되었다. 상대갑석(上臺甲石) 은 1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상대갑석은 3단 호형(弧形) 1층 탑신 받침이 있고, 낮은 각형(角形)의 부연(副椽)이 있다. 1층 탑신 받침에 대하여 『전남의 석탑』에서는 3단 각형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3단 호형이다. 상대갑석은 완만한 경사를 보이며, 미세한 우동(隅棟)이 있다.

탑신은 4층이다. 정영호의 조사에 의하면, 5층 탑신은 1956~1964년 사이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과 옥개(屋蓋)는 모두 각각 한 돌로 이루어졌는데, 탑신의 각 면에는 2개의 우주가 돋을새김되었다. 1~2층 탑신의 우주는 희미하며, 3~4층 탑신의 우주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2층 탑신 받침만 1단 각형의 받침이 있고 3층부터는 없다. 옥개 받침은 1층과 2층은 5단이고, 3층부터는 4단이다.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고 전각의 반전은 급하다. 우동은 뚜렷하다. 물끊기 홈과 풍탁공(風鐸孔)은 없다.

[특징 및 평가]

전 청풍사지 석탑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영암 성풍사지 오층석탑(靈巖聖風寺址五層石塔), 영암군 군서면에 있는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靈巖道岬寺五層石塔)과 친연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 석탑에 비해 전반적으로 간략하고 퇴화된 양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전 청풍사지 석탑은 영암 성풍사지 오층석탑이 건립된 1009년(고려 목종 12)보다 뒤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의 최하부에는 마치 탑구처럼 넓은 지대석이 있다. 이런 지대석의 형태는 일반적으로는 독특하다고 보기 어려우나, 친연성을 보이는 영암 성풍사지 오층석탑·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그리고 광주의 석탑에서는 살펴보기 어려워 전 청풍사지 석탑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석탑 상층 기단에서는 청자호(靑磁壺)가 발견되었다. 청자호에는 화장한 뼛가루가 20g 정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청자호는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조선 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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