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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004
한자 花潭祠
영어공식명칭 Hwadamsa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 781-2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한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35년연표보기 - 화담사 정수충 영당으로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 - 화담사 철폐[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건물은 놔두고 제사만 폐함]
개축|증축 시기/일시 1776년 - 화담사 사우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5년 - 화담사 복설[다시 제사를 지냄]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3월 20일연표보기 - 화담사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8호 지정
현 소재지 화담사 - 광주광역시 서구 화운로 156번길 17-8[화정동 781-23]지도보기
원소재지 화담사 - 광주광역시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 781-23]
성격 사우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관리자 하동정씨 문중|화담사보존회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8호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개설]

화담사는 고려 멸망 후 조선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명인 묵은(黙隱) 정희(鄭熙)[1350~?]와 정희의 아들 열지(悅之) 정초(鄭招)[?~1434], 정초의 아들로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하고 이후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佐翼功臣)에 오른 경부(敬夫) 정수충(鄭守忠)[1401~1469], 정수충의 후손이자 광주 출신인 일관(一貫) 정오도(鄭吾道)[1625~1736],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광주 출신 여흥(驪興) 민제장(閔濟章)[?~1729]의 5명을 배향하고 있다.

[변천]

화담사는 1735년(영조 11) 조정의 명을 받아서 정수충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影堂)으로 건립되었다. 1776년(영조 52) 정수충의 후손인 하동정씨(河東鄭氏) 문중과 광주 지역 유림들이 사우와 여러 건물을 건립하였다. 1796년(정조 20) 민제장이, 1809년(순조 9) 정희가 추가 배향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제사만 폐하고 사우와 다른 건물을 놔두었다. 1905년(고종 42) 광주향교를 중심으로 한 광주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다시 제사를 지내고, 1906년(고종 43) 정오도가, 1910년 정초가 배향되면서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1993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형태]

사당인 화담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구조이며 맞배지붕이다.

[현황]

내삼문인 양양문(洋洋門), 외삼문인 입덕문(入德門)이 있으며, 양양문과 입덕문 사이에 동재인 청지재(廳之齋)와 서재인 열호재(悅乎齋)가 있다. 강학(講學) 구역이 앞에 있고, 제향(祭享) 구역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이다. 그 외 화담사중수비(花潭祠重修碑)가 있다. 하동정씨 문중과 화담사보존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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