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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의 문화유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70
한자 新石器時代-文化遺産
영어공식명칭 Cultural Heritage of the Neolithic Era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정민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의 유적.

[개설]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지구 기후는 온난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하였다. 한반도 역시 B.P.8,000년에서 B.P.5,000년 사이에 현재와 같거나 약간 높은 기후가 형성되었고, 몇 번의 부분적인 기후 변동을 통해 현재의 기후와 식생이 형성되었다. 이 후빙기의 새로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나타난 인류의 새로운 사회 양상을 구석기시대와 구별하여 신석기시대라 한다. 신석기시대 인류는 토기와 간석기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동물의 가축화, 작물의 재배화, 직물 직조 등 새로운 생산 방식을 통해 안정된 정착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전라남도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을 살펴보면 조기~전기의 유적은 원도권(遠島圈) 및 중내만권(中內灣圈)에 입지하며 조개더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기에 이르면 원도권 및 중내만권의 유적이 급감하고 특히 전라남도 내륙의 경우에는 중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 후기~만기가 되면 전라남도 도서 지역에서 조개더미가 다시 등장하며 내륙 지역에서도 신석기 유적이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유적과 유물]

광주광역시에서는 2006년 노대동 유적이 발굴되면서 처음으로 신석기 유적이 확인되었다. 대촌천 최상류에 있는 노대동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구가 함께 확인되었는데 신석기시대 유구로는 수혈 3기와 적석 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수혈 3기는 한곳에 무리지어 있으나 적석 유구는 수혈군에서 30m 정도 단독으로 떨어져 있다.

1호 수혈은 원형(190×154×30㎝)으로 격자문토기, 원형점열문토기(圓形點列文土器),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 저부편(底部片), 석재 등이 출토되었다. 2호 수혈은 원형에 가까운 부정형(190×154×30㎝)으로 사단선문토기, 횡단선문토기, 이중구연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3호 수혈은 원형(183×167×10~20㎝)으로 민무늬토기 저부편 등이 출토되었다. 적석 유구는 타원형(180×120×10㎝)으로 원형점열문토기, 사단선문토기, 횡단선문토기, 이중구연토기, 석부 등이 출토되었다.

노대동 유적의 수혈에서는 다수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으나 빗살무늬토기가 소량이고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석기도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또한 면적이 좁고 경화된 면이나 노 시설 등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거주 공간으로서의 증거는 불충분하다. 집석유구 역시 불을 땐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그 용도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노대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의 양상을 통해 신석기시대 후기~만기에 해당하는 유적임을 알 수 있다.

노대동 유적 이외에도 광주광역시 화전 유적 저습지에서는 B.P.8200년에 해당하는 퇴적층이 화분 분석을 통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전라남도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해안 근처에서 확인된다. 노대동 유적영산강 유역[지석강 상류]에서 최초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적이다. 전라남도 내륙에서 확인되는 신석기시대 유적들은 후대에 들어선 유구에 의해 파괴되어 유물만 수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노대동 유적을 통해 처음으로 온전한 신석기 시대 유구와 유물이 발굴 조사되었다. 노대동 유적은 전라남도 내륙 지역의 신석기인 거주를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자 내륙 지역의 신석기 문화를 이해하는 데 단초를 제공하는 자료로서 그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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