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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181
한자 楊林洞
영어공식명칭 Yangnim-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창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에서 전라남도 광주부 양림정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6년 - 전라남도 광주부 양림정에서 전라남도 광주부 지석동과 양학동으로 분동
변천 시기/일시 1947년 - 전라남도 광주부 지석동과 양학동을 통합하여 전라남도 광주부 양림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1년 - 전라남도 광주부 양림동에서 전라남도 광주시 양림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전라남도 광주시 양림동에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양림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양림동에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양림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양림동에서 광주직할시 서구 양림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광주직할시 서구 양림동에서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행정동
면적 0.63㎢
가구수 3,320가구
인구[남/여] 7,592명[남 3,492명|여 4,100명]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양림동(楊林洞)의 지명은 양림산의 산자락이 밖으로 뻗어나간 것을 뜻하는 버드름에서 유래하여, 버드나무를 뜻하는 한자 '양(楊)'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 '림(林)'을 합해 양림(楊林)이 되었다는 설과 버드나무가 우거져 있는 마을이란 뜻의 양촌(楊村)과 유림(柳林)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양림동은 조선시대 광주목 부동방면(不動坊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양림리, 방림리, 원지리, 신사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가 되었다. 1935년 광주부 양림정으로 개편하였고, 1946년 양림1구와 양림2구로 나누어 지석동과 양학동으로 분동하였으나 1947년 지석동과 양학동을 통합하여 양림동이 되었다. 1961년 광주시 동부출장소 관할로 개편되었고, 1973년 구제 실시에 따라 광주시 동구로 편입되었다. 1980년 광주시 서구 관할로 개편되었다가 1986년 직할시 승격으로 광주직할시 서구 양림동이 되었다. 1995년 남구 신설과 광역시 승격으로 광주광역시 남구로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양림동양림산에서 사직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의 동남쪽 사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광주천과 접해 있다. 양림산은 봄에는 수선화를 볼 수 있고, 가을에는 양림동 선교사 묘역을 중심으로 핀 꽃무릇을 볼 수 있다. 양림산은 주로 상수리와 단풍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1900년대 초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식재한 은단풍나무, 흑호도나무, 피칸나무 등을 볼 수 있다.

[현황]

2019년 12월 기준으로 양림동의 면적은 0.63㎢이며, 인구는 3,320가구에 총 7,592명으로 남자가 3,492명, 여자가 4,100명이다. 양림동은 동쪽의 광주천을 경계로 동구 금동학동, 서쪽으로 남구 서동백운동, 남쪽으로 남구 방림동, 북쪽으로 남구 사동과 접해 있다.

양림동은 한옥과 서양식 건물 등의 근현대 건출물과 20세기 서양 선교사의 활동과 광주의 독립운동가, 종교인, 문화예술인의 활동과 관련한 근현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이 조성되면서 광주시민과 관광객에게 근현대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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