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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며 행진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3.1운동 이 1919년 3월 10일에 일어났다. 3월 10일 광주교 아래 강가 모래밭에서 수백 명이 모여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나아갔고, 양림리 방면에서 숭일학교 · 수피아여학교 등의 학생들 주도로 모이기 시작한 인원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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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한 8간(間)도로, 즉 오늘날의 구역전통 도로개설 공사가 동시에 추진된 것인데, 1921년 당시에는 본정 5정목 [지금의 충장로 5가 ] 교차점까지만 실시된 것으로 보인다. 이 도로의 연장 공사는 1927년 신광주교 즉 광주대교 를 가설할 때 동시에 시행되어 옛 광주교 즉 공원다리 를 통하는 1등도로 목포선 을 대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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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작은장 은 음력 2일과 7일에 열리는 큰장에 대비되어 음력 4일과 9일의 작은 장날에 열리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불려진 것이다. 광주작은장 은 지금의 서석교 와 광주교 사이 광주천 에 형성된 큰 모래톱에서 열렸다. 모래톱의 모습은 1917년에 제작된 「광주군 지형도」 를 보면 규모와 형태를 잘 알 수 있는데, 흐르는 물길과 모래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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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간호사 홍덕주(洪德周) , 약제사 장호조(張鎬祚) 등에 의해 제1호 300부가 제작되었다. 1호는 3월 13일 광주 큰 장[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교 부근], 광주시 내, 제중원 등에서 배포되었다. 2호는 1919년 3월 18일 광주 큰 시장에서 지역민에게 배포되었다. 이후 황상호 등은 일제에 검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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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되었다. 1919년 3월 8일 큰 장날을 기해 만세를 부르려던 계획은 독립선언서 등 인쇄가 마무리되지 못해 3월 10일 작은 장날로 연기되었다. 10일 오후 3시 30분, 광주교 밑 모래사장에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들자, 김복현 · 김강 · 서정희 등은 군중들과 함께 ‘조선 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운동의 개시를 선언하였다. 이어 시위 군...